대구 동구 신암초등학교 학생들이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발가락으로 글쓰는 뇌성마비 시인 이흥렬씨 초청강연을 듣고 발가락을 사용해 글자 쓰는 장애체험을 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신암초교 제공
시집 ‘앉은뱅이 꽃’ 쓴 이흥렬씨 강연
“30살까지 바깥 나들이를 못하고 집 안에만 있었는데 일기와 시는 고통스런 시간을 이겨내는 소중한 의지처였습니다.”
‘발가락시인’으로 잘 알려진 뇌성마비 시인 이흥렬(54·사진)씨는 ‘장애인의 날’인 20일 대구 북구 대현동 신암초교를 찾아 장애를 극복하고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들려줬다. 이씨는 학교방송에서 “예전에는 장애인이 제대로 된 취급을 받기 힘들었다”며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고 자립을 위해 재활원에서 생활하며 쓴 일기가 언론에 보도된 뒤 시인 대접을 받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배가 고파도 라면 한개 사 먹을 돈이 없어 밤새 울었던 때가 있었고, 걸레가 얼어 붙을 정도로 차가운 방에서 지내기도 했다”며 “과거의 고통이 지금의 행복을 위한 자산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날 학생들과 함께 교실에서 발가락으로 글씨를 쓰는 장애 체험행사도 열었다. 발가락글씨 체험에 참가한 이아무개(12)군은 “시인 아저씨를 따라 장애체험을 해보니 손과 발을 마음대로 쓰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1955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추락사고로 인해 1급 뇌성마비가 됐고, 정규 학교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혼자서 깨친 한글을 바탕으로 고등부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거동을 할 수 없어 30살까지 집 안에만 있다가 피땀 어린 훈련 끝에 발가락으로 펜을 집게 됐으며, 150편이 넘는 시를 써 시집 <앉은뱅이 꽃>을 출간했다. 그는 현재 영진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다니면서 장애인문인협회장을 맡아 전국의 장애인에게 문학도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이 행사를 마련한 김영순 특수학습 교사는 “장애인 시인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학생들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함께하는 이웃이라는 친근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시인 이홍렬(54)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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