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헌용 교사와 그가 한 제자에게 쓴 편지.
‘편지쓰는 교사’ 하헌용씨
2년전 정년 퇴임 뒤에도 기간제교사로 활동
“사랑도 편지도 받을 때보다 보낼 때가 행복” 14일 오전 충북 청주 한솔초등학교 4학년5반 교실.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와 함께 학생들이 빠져나가자 한 노교사가 뭔가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준수에게’로 시작하는 편지였다. “제자한테 쓰는 거유. 얼마전에 군대갔는데 쫄병생활이 어떤지 궁금해서유.” 묻지도 않았는데 답을 하며 쓰던 글을 멈췄다. 무슨 잘못을 감추려는 어린아이 같다. 왼쪽 가슴에 ‘강사 하헌용’이라는 이름표가 눈에 띈다. 기간제 교사 하헌용(64)씨다. 담임교사가 결혼을 해 빈자리를 지난 11일부터 메우고 있다. 2007년 8월 평교사로 정년퇴임했지만 틈틈이 기간제 교사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42년을 넘게 아이들과 지냈는데 지금도 눈 감으면 아이들 소리가 들려 다시 학교를 찾고 있다”며 “이 행복이 영원했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편지쓰는 교사로 유명하다. 해마다 300~500여통씩 편지를 제자들에게 보낸다.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중3, 고3 등 어려운 시기를 맞은 제자를 찾아 거의 날마다 편지를 쓰고 있다.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기니까 쓰는 것”이라며 “아마 미련과 걱정이 많은가 보다”라며 웃었다. 그의 편지 사연은 1965년 4월 스무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발령받은 음성 쌍봉초등학교에서 1년 남짓 교사 생활을 하다 군에 입대한 그는 제자들에게 무더기 편지를 받았다. 일일이 읽고 답을 한 것이 편지 사랑의 출발점이다. 학교에 돌아와서도 졸업한 학생이나 재학중인 학생에게 수시로 편지를 썼다. “편지는 말로 표현 못하는 속내를 주고 받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했다. 평생 제자와 편지를 주고받아 온 그는 딱 한 번 외도를 한 적이 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참전 군인 5명과 펜팔을 했다. “장병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여교사인 척하고 연애편지를 썼는데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며 “한 전역병이 학교로 찾아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고 웃었다. 그가 보낸 편지는 없지만, 제자들한테 받은 답장은 그의 보물이다. 퇴임 때까지 초등학교 11곳을 옮겨다닌 그는 학교별로 제자들의 편지를 그대로 모아 두고 있다. 가끔 옛 편지로 제자들과 추억을 나누기도 한다. 지난해 가을 음성 쌍봉초 동문체육대회에 참석해 편지로 웃음 꽃을 피웠다. 이강을(55) 농협충북본부장은 “편지를 통해 40여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했다”며 “그때 그 추억을 그대로 간직해 준 선생님이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도, 편지도 받을 때보다 보낼 때가 행복하다”며 “편지를 받은 제자들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사랑도 편지도 받을 때보다 보낼 때가 행복” 14일 오전 충북 청주 한솔초등학교 4학년5반 교실. 수업을 마치는 종소리와 함께 학생들이 빠져나가자 한 노교사가 뭔가 열심히 쓰기 시작했다. ‘준수에게’로 시작하는 편지였다. “제자한테 쓰는 거유. 얼마전에 군대갔는데 쫄병생활이 어떤지 궁금해서유.” 묻지도 않았는데 답을 하며 쓰던 글을 멈췄다. 무슨 잘못을 감추려는 어린아이 같다. 왼쪽 가슴에 ‘강사 하헌용’이라는 이름표가 눈에 띈다. 기간제 교사 하헌용(64)씨다. 담임교사가 결혼을 해 빈자리를 지난 11일부터 메우고 있다. 2007년 8월 평교사로 정년퇴임했지만 틈틈이 기간제 교사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42년을 넘게 아이들과 지냈는데 지금도 눈 감으면 아이들 소리가 들려 다시 학교를 찾고 있다”며 “이 행복이 영원했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편지쓰는 교사로 유명하다. 해마다 300~500여통씩 편지를 제자들에게 보낸다.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중3, 고3 등 어려운 시기를 맞은 제자를 찾아 거의 날마다 편지를 쓰고 있다.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기니까 쓰는 것”이라며 “아마 미련과 걱정이 많은가 보다”라며 웃었다. 그의 편지 사연은 1965년 4월 스무살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발령받은 음성 쌍봉초등학교에서 1년 남짓 교사 생활을 하다 군에 입대한 그는 제자들에게 무더기 편지를 받았다. 일일이 읽고 답을 한 것이 편지 사랑의 출발점이다. 학교에 돌아와서도 졸업한 학생이나 재학중인 학생에게 수시로 편지를 썼다. “편지는 말로 표현 못하는 속내를 주고 받는 묘한 매력이 있다”고 했다. 평생 제자와 편지를 주고받아 온 그는 딱 한 번 외도를 한 적이 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참전 군인 5명과 펜팔을 했다. “장병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여교사인 척하고 연애편지를 썼는데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며 “한 전역병이 학교로 찾아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고 웃었다. 그가 보낸 편지는 없지만, 제자들한테 받은 답장은 그의 보물이다. 퇴임 때까지 초등학교 11곳을 옮겨다닌 그는 학교별로 제자들의 편지를 그대로 모아 두고 있다. 가끔 옛 편지로 제자들과 추억을 나누기도 한다. 지난해 가을 음성 쌍봉초 동문체육대회에 참석해 편지로 웃음 꽃을 피웠다. 이강을(55) 농협충북본부장은 “편지를 통해 40여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했다”며 “그때 그 추억을 그대로 간직해 준 선생님이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도, 편지도 받을 때보다 보낼 때가 행복하다”며 “편지를 받은 제자들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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