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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풍경] “가나다라~” 할머니들의 희망 노래

등록 2009-06-25 23:17

울산 울주군 삼동면 출강마을 김말봉 할머니의 컨테이너 방에서 성침봉사회 한형숙 부회장(왼쪽)이 김 할머니(오른쪽)에게 초등 1년 국어교과서를 가르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울산지사 제공
울산 울주군 삼동면 출강마을 김말봉 할머니의 컨테이너 방에서 성침봉사회 한형숙 부회장(왼쪽)이 김 할머니(오른쪽)에게 초등 1년 국어교과서를 가르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울산지사 제공
출강마을에 한글교실 연 성침봉사회
주민 13명과 1년6개월째 초등수업
교실 비좁아 컨테이너도 직접 마련

“친구, 내 친구, 정다운 친구.”

매주 화·목요일 오후 2시가 되면 울산 울주군 삼동면 출강마을 김말봉(78) 할머니 집에선 책 읽는 소리가 들린다. 책을 읽는 이들은 70~80대 할머니들로 1년6개월째 한글수업을 받고 있다.

이 마을에 한글교실이 문을 연 것은 지난해 1월이다. 자원봉사를 나온 대한적십자사 울산지사 남구지부 성침봉사회 공유정 회장이 혼자 사는 김 할머니 집에 들렀다가 김 할머니가 “우편물 내용이 무엇인지 읽어 달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선 한글 가르치기에 나섰다.

입소문이 나면서 주변의 할머니들이 김 할머니 집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지금은 농번기여서 5명이 수업을 받고 있지만 평상시에는 수강생이 13명이나 된다. 10리나 떨어진 절에 살고 있는 할머니도 걸어서 찾아온다. 처음에는 공 회장이 혼자 수업을 했지만 제자들이 늘면서 다른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보조교사 역할을 한다.

수업은 한글 실력에 따라 2개 반으로 나뉜다. 아예 한글을 모르면 기역부터 시작한다. 기초가 다져지면 기초반에서 초급반으로 옮겨 초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를 공부한다.

할머니들은 한글만큼 어려운 수학도 배운다. 1에서 100까지 숫자를 헤아리고 쓰는 것은 그나마 쉬운 편이다. 더하기와 빼기는 돌아서면 금방 까먹는다. 며칠을 고민하던 공 회장이 묘안을 짰다. 10원부터 1만원까지 화폐 단위별로 돈을 바꿔 주고받는 게임을 반복하면서 할머니들은 저절로 더하기와 빼기에 능숙해졌다.

셈법을 터득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고추와 호박, 옥수수 등을 마을 근처에서 팔게 된 것이다. 김 할머니는 “칠십 평생 까막눈이어서 우편물도 읽지 못하던 내가 혼자서 우편물을 읽어내려간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데 용돈까지 벌 수 있어서 너무 신기하다”며 “수업시간이 너무 즐겁고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공 회장은 “빨리 익히도록 일부러 숙제를 많이 내주는데도 할머니들이 거르는 일이 거의 없다”며 “2시간30분 동안 계속되는 수업시간이 힘들기도 하실 텐데 화장실도 가지 않으시고 자리를 지키시는 모습을 보면서 되레 배우는 것이 많다”고 밝혔다.

어려움도 있다. 교실이 좁기 때문이다. 김 할머니는 애초 문중 소유의 초가집에 살았으나 지은 지 100년이 넘어 붕괴 위험이 있고 비가 샜다. 성침봉사회가 집을 안전하게 고쳐주려고 했으나 문중의 반대로 어렵게 되자 컨테이너를 마당에 마련해 줬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김 할머니의 컨테이너 안은 푹푹 찐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선풍기도 없다. 컨테이너 면적도 13㎡로 좁아 10명이 넘으면 앉을 자리도 없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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