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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사람과풍경] 그의 바늘 끝, 꽃이 피고 나비가 난다

등록 2009-06-25 23:43

정경희씨가 사선 조각보 앞에 서있다.
정경희씨가 사선 조각보 앞에 서있다.
인사동서 침선공예전 여는 정경희씨

“바늘에는 마력이 있나봐요. 손목이 부서질 듯 아파도 자수를 놓는 일이 행복한 걸요.”

광주 수피아여고 정경희(56) 교사가 30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이즈(옛 학고재)에서 ‘바늘자리에 꽃이 핍니다’라는 주제로 침선공예전을 펼친다. 남도에서 기량을 닦은 침선공예가가 서울 한복판에 솜씨를 내보이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전통자수 작품 80여점 전시
손목 아파도 바늘 쥐면 행복
“전통·실용 갖춘 명품 목표”

전시에선 고향집의 이불·베개·방석 등에서 친숙하게 만났던 전통 자수 60여점, 규방 안의 장식장 팔각틀 놀이개 따위에 화조와 나비를 수놓은 민속 공예 20여점 등 창작품 80여점을 선보인다. 때깔고운 천 위에 바늘로 한 땀 한 땀 생명을 불어넣은 작품들은 색감이 화려하고 문양이 조화롭다. 특히 잎맥이 살아있는 듯한 ‘연잎 다포’와 버선과 꽃신으로 장식한 ‘함지박 탁자’는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는 애초 1976년 조선대 미술교육과를 마치고 교사가 되면서 한국화가를 꿈꿨다. 한국화가가 되려고 남종화의 대가인 남농 허건, 아산 조방원한테 전통 필법을 배웠다. 작품 활동에 한창이던 그는 17년 전 어느날 어머니 윤판임씨의 바느질을 돕다가 침선공예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내친 김에 공예가 송현경씨를 찾아가 자수를 익히며 열성을 보였다.

“어머니는 골병이 든다고 못하게 했어요. 하지만 잊혀져가는 전통미를 되살리는 손바느질이 좋았어요. 한 땀 한 땀 구름과 나비를 수놓고 있으면 행복감이 부풀어 오르곤 했죠.”

그는 무섭도록 침선공예에 몰입했다. 학기 중에는 하루 7시간, 방학 중에는 온종일 바늘을 붙잡고 씨름했다. 손목 힘줄에 무리가 가자 압박붕대를 감고 바늘을 들었다. 쪼그려 작업을 하느라 어깨가 결리고 다리가 마비돼 병원을 들락거렸지만 바느질은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미술을 전공한 덕분에 구상~도안~염색~재단~수놓기~마감질로 몇달씩 이어지는 창작의 전 과정을 혼자서 끌고갈 수 있었다. 늘 바느질은 기능이고 디자인은 감각이라 여겼다. 이 때문에 색동 저고리와 조각 밥상보의 전통미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리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

이런 정성으로 지난해 광주 김대중센터에서 ‘바늘 자리가 숨을 쉽니다’라는 전시회를 열어 호평을 받았다. 전시는 광주 예술의 거리, 지하철 상무역, 동신대 한방병원 등지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신작들을 보태 서울의 안목에 도전했다.

그는 “전통미와 실용성을 겸비해 젊은층과 외국인한테도 눈길을 끄는 명품을 빚고 싶었다”며 “시장이 없어 돈벌이는 어렵지만 살아있는 한 행복한 바느질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사진 갤러리 이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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