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간직한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동네와 골목길들이 뉴타운 사업으로 오는 2011년 사라진다. 금화아파트 언덕길에서 만난 벽화가 그려진 계단과 야트막한 한옥들이 사이좋게 들어선 골목길, 실핏줄처럼 집과 집을 잇는 가느다란 길(왼쪽부터).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시민단체 ‘문화우리’ 회원 등 20명
재개발 앞둔 북아현동 골목길 답사
“이렇게 아름다운 곳 없어진다니…”
재개발 앞둔 북아현동 골목길 답사
“이렇게 아름다운 곳 없어진다니…”
무덥고 끈끈한 날이었다. 콘크리트 바닥은 한여름의 열기를 뿜어냈고, 나무 그늘 밑에서는 동네 개들이 혀를 빼물고 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지난 27일 오후 4시30분,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에는 6월의 햇살이 뜨겁게 내려앉았다.
이날, 충정로 우체국 앞에는 북아현동 골목길 답사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답사는 시민단체 ‘문화우리’가 마련했고, 사라져가는 골목길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나누려는 시민 20여명이 참여했다. 해설은 주민 한지원(40)씨가 맡았다. 시민 20여명은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한씨의 설명을 들으며 자유롭게 답사에 나섰다.
서대문 선교센터를 지나 경기대길로 접어들자 작은 골목길들이 여기저기 뻗어나 있었다. 한씨를 따라 계단으로 이어진 골목길로 들어서자 오래된 풍경이 펼쳐졌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크기의 골목길을 따라 양 옆으로 1950~1960년대에 지어진 야트막한 한옥들이 사이좋게 들어앉아 있었다. 비록 한옥은 낡고 뒤틀려 있었지만, 주민 최영수(50)씨는 “여름에 에어콘 없이도 지낼 수 있는 한옥이 아파트보다 정겹고 좋다”고 말했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금화장 5거리를 지나 마을 꼭대기로 향했다. 평지가 아닌 언덕에 집들이 들어서 있다보니 각 집의 대문에 닿는 계단이 높고 아득했다. 계단은 폭과 높이가 일정하지 않았다. 일부 계단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가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마을 정상에 이르자 거대한 몸집의 금화아파트가 마을을 집어삼킬 듯 우뚝 솟아 있었다. 이 아파트는 1968년 ‘원조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이 세운 것으로, 40년 세월의 켜를 고스란히 짊어진 모습이었다. 곳곳이 금이 가고 부서져 있었지만, 아파트 앞 뜰에 서니 서울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한지원씨는 “그동안 이 동네 주민 모두가 이처럼 좋은 풍경을 아무런 대가로 지불하지 않고 누릴 수 있었지만, 재개발이 끝나면 이 풍경은 소위 ‘있는’ 사람들만의 것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마을 꼭대기인 금화아파트에서 경기대길로 내려오는 길은 미로와 같은 골목길이 이어져 답사에 참여한 시민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곳 집들은 모두 저마다의 모습으로 들쭉날쭉 자리잡고 있었는데, 골목길은 그 집들 사이를 굽이굽이 흘러 실핏줄처럼 온 마을을 이었다. 답사에 참여한 이승민(23)씨는 “답사에 참여하기 전까지만 해도 개발은 다 좋은 것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이 사라진다니 아쉽다”며 “개발을 하더라도 옛것과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아현동 170번지 일대는 2005년 뉴타운 개발지구로 지정돼 2009년 현재 조합 설립 절차를 끝마친 상태다. 2011년까지 철거가 완료되고, 2015년 공사가 끝날 예정이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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