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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희미해지는 피맛골, 아련한 추억 더듬는다

등록 2009-07-05 17:54수정 2009-07-05 18:31

철거 전 서울 종로1가 피맛골 빈대떡 골목. 〈한겨레〉 자료사진
철거 전 서울 종로1가 피맛골 빈대떡 골목. 〈한겨레〉 자료사진
비오는 날엔 아직도 막걸리 손님
10일까지 사진·물품 등 전시회
무너진 골목 위로 비가 내렸다. 버리고 떠난 식당 안에는 의자와 시계가 나뒹굴고 멈춰 선 환풍기에는 때가 새카맣게 끼어 있었다.

“다 철거됐어. 이제 일곱 집만 남았지. 우리도 곧 이 식당들처럼 문 닫아야 해.” 우산을 받쳐든 윤현수(50)씨가 골목에서 비질을 하다 말고 땅바닥에 침을 탁 뱉으며 말했다.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뒤 피맛골은 황량했다. 좁은 골목길 옆으로 생선구이가게 등 작은 식당들이 오밀조밀 늘어서 있던 풍경은 온데간데없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사이로 철근 구조물을 내보이며 맥없이 쓰러진 건물들과 철제 가림막이 쓸쓸함을 더했다. 가림막 곳곳에 나붙은 상가이전 안내문구만이 피맛골의 옛 모습을 어렴풋이 증언하고 있었다. 윤씨는 “평소에는 재개발 공사로 소음이 심하고 먼지가 많이 일어 손님이 없지만, 비가 오면 빈대떡에 막걸리를 찾아 이곳으로 오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고 말했다.

피맛골은 지난 600여년 동안 서민들의 거리였다. 조선시대 고관대작과 그들의 말을 피해 보통 백성들이 걸어다녔던 뒷골목은 지난 세월 서민들의 허기와 치기를 달래주던 서울의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피맛골은 이제 재개발로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에 대한 기억만은 여전하다. 이곳에서 부인과 함께 빈대떡과 막걸리를 들던 박윤식(63)씨는 “가끔 이곳을 찾은 지 벌써 30년이 넘었다”며, “우리 같은 사람들의 삶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던 피맛골이 사라져 아쉽다”고 말했다.

피맛골의 기억을 적극적으로 남기는 사람들도 있다. 오창섭 건국대 교수(디자인학부)는 학생들과 함께 지난달 15일부터 오는 10일까지 종로구 한국디자인문화재단에서 ‘디자인, 피맛골을 추억하다’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 전시는 골목 곳곳을 누비며 기록한 사진과 영상, 철거 현장에서 직접 수집한 문패, 전구, 바가지, 꽃병 등을 통해 피맛골의 과거와 현재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피맛골에 모여 있던 허름한 식당들은 대부분 인근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으로 자리를 옮겼다. ‘골목’은 무너지고, 사라진 골목 대신에 ‘타운’이 들어섰다. 이 ‘타운’에서는 더는 생선 굽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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