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린이가 석면 건축물이 철거중인 뉴타운 지역에 자리한 서울 성동 구립 홍익어린이집으로 등원하고 있다. 시민환경연구소 제공
왕십리뉴타운 철거지역 한복판
아이들 120여명 아토피 몸살
주민 이전 요구도 번번이 묵살
아이들 120여명 아토피 몸살
주민 이전 요구도 번번이 묵살
김형주(36)씨의 딸 시연(4)이는 지난 4월부터 온 몸을 긁기 시작했다. 피가 나도 긁는 바람에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았다. 두 달 뒤부터는 가래가 끓기 시작했다. 약을 먹여도 낫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감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손경숙(34)씨의 두 딸 명진(6)이와 수진(4)이는 얼굴과 온 몸이 아토피 상처투성이다. 지난 5월부터 아토피가 생기기 시작했다. 명진이의 귀에서는 진물이 흘러나온다.
이들은 모두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에 산다. 이 일대는 왕십리뉴타운 1구역이 들어설 지역으로 지난 3월부터 본격적인 철거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그 한 가운데에 자리한 성동 구립 홍익어린이집에 다닌다. 이 일대 철거대상 건축물 500여채 가운데 130여채가 석면건축물이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이 일대는 가림막도 없이 철거가 진행됐다. 아이들은 공사장 먼지와 석면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돼 왔다. 이 어린이집은 서울시가 안심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다고 인증한 ‘서울형 어린이집’이다. 주민들은 구청과 시청에 어린이집 이전을 요구했지만 번번히 묵살당했다. 그러는 사이 208명에 달하던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하나둘 떠났다. 지금은 120여명이 남았다.
지난달 31일 시민환경연구소는 어린이집 학부모위원회의 요청으로 지난 4월17일부터 이 일대에서 진행해오던 석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소는 “석면 철거가 끝난 자리에서 석면 함유량이 최고 17%가 넘는 석면 폐기물이 발견됐고, 어린이집 창문먼지에서도 석면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최예용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은 “석면은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적은 양으로도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물질”이라며 “석면 철거작업이 끝난 곳에서는 석면이 검출되거나 확인되지 않아야 정상”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2일 오전 10시30분께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어린이집 아이들과 학부모 50여명이 모여 어린이집 이전과 철거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씨는 “이 일대 주민들의 절반 이상이 저소득층에 맞벌이 가정”이라며 “직장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석면이 날리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손씨는 “아토피로 온 몸을 긁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무너진다”며 “제발 어린이집을 옮겨달라”고 호소했다. 손씨는 아이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고, 아이는 그런 엄마를 오래도록 바라다봤다. 이날 오후 이들이 떠난 자리에서는 서울시 행사인‘엄마가 신났다 페스티벌’이 열렸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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