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봄 남산에 실개천 흐른다
서울시, 지하수 활용 2.6㎞ 조성
연못 등 수경시설도 만들 계획
연못 등 수경시설도 만들 계획
조선 초기 문신이었던 정이오(1347~1434년)는 남산의 여덟가지 매력을 읊은 <남산팔영>이라는 시에서, 계곡 사이 맑은 물에 갓끈을 씻는 선비들의 모습을 노래했다. 지금 남산은 실개천 하나 없는 메마른 산이지만 ‘그 때 그 시절’에는 계곡을 따라 맑은 물이 흘렀고, 시인이 노래한 시 속 선비들은 맑을 물을 더럽힐까봐 차마 발은 씻지 못하고 갓끈만 씻었다고 한다.
600여년 전 옛 시인의 시에서만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던 풍경을 내년 봄부터는 남산에서 만날 수 있게 된다. 서울시는 남산에 자연형 실개천을 조성하는 내용의 ‘물이 흐르는 남산 만들기’ 사업을 추진한다고 8일 밝혔다. 실개천은 남산 한옥마을과 장충지구에서 북쪽산책길에 이르는 2.6㎞ 구간에 조성된다.
서울시는 기존 콘크리트 배수로를 자연형 계곡으로 재정비하거나 새로운 수로를 만들어 실개천을 조성할 예정이다. 빗물과 땅속으로 스며든 물을 사용하고, 지하철에서 생기는 지하수도 활용할 방침이다. 이 물은 여과·살균을 거쳐 물놀이가 가능할 정도의 수질이 되며 하루 100t 가량 실개천에 공급된다. 또 남산 곳곳에 ‘개울 소리길’, ‘벚나무 터널길’, ‘꽃내음길’, ‘신약수 친수마당’ 등의 특화구역을 조성해 오감을 자극하는 공간으로 꾸며나갈 예정이다.
서울시는 남산의 역사 기념공원 주변도 새롭게 단장할 방침이다. 장충단 공원과 유관순 열사 동상 주변에 연못을 조성하고, 3·1운동기념탑 앞으로는 3·1운동을 상징하는 수경시설도 만들 계획이다. 시민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서울시 남산 청사 뒤편으로는 100㎡ 크기의 연못도 조성한다. 기존의 야간조명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동식물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도록 낮은 조도로 교체된다.
서울시는 남산의 물줄기가 회복되면 수변 서식처를 통해 양서류 등 생태계를 더욱 다양화하는 효과도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990년대 남산 제모습 가꾸기 사업을 통해 현재 남산에 사는 생물이 181종으로 늘어났지만, 아직 생태공원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시의 설명이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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