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설이나 한가위 등 명절에 집집마다 차례에 올릴 청주를 직접 담갔다. 그러나 일제와 군사독재 시절 집에서 술을 빚는 일이 제한·금지되면서 수많은 집안술들이 사라졌다. 현재까지 대표적으로 남아 있는 전통 청주인 충남 서천의 한산소곡주를 빚는 모습(왼쪽)과 밀양의 교동방문주. <한겨레> 자료사진
다가오는 한가위, 관심 끄는 전통주
소곡주·교동법주·문배주…전국에 다양한 전통주
달콤 쌉쌀 깊은맛…차례상엔 맑은 청주가 제격
소곡주·교동법주·문배주…전국에 다양한 전통주
달콤 쌉쌀 깊은맛…차례상엔 맑은 청주가 제격
올해 한국주류산업협회가 공개한 ‘2008년 주류별 출고동향’을 보면 지난해 국내 주류업계가 출고한 술은 309만8022㎘로, 이 가운데 125만3538㎘가 소주, 177만2800㎘가 맥주였다. 이 두 술이 전체 생산량 가운데 97%를 차지해 한국의 술판은 소주와 맥주의 싹쓸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전국에는 오래전부터 조선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달래줬던 수많은 술이 있다. 전통술은 크게 소주와 청주, 막걸리로 나뉘는데, 맥주에 밀려났던 대중적인 술 막걸리는 최근 건강 바람을 타고 시민권을 되찾았다. 그에 앞서 부활한 전통 소주와 청주들도 주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한가위를 앞두고는 차례상에 올리는 청주가 불티나게 팔린다. 한때 청주를 일본 청주의 한 브랜드인 ‘정종’이라고 불렀지만 적절하지 않은 말이다. 전통주 연구가인 박록담(51)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예로부터 차례상에는 맑은 술인 청주를 올리는 것이 법도”라며 “예전에는 집집마다 청주를 빚었지만, 요즘은 자기 고장에서 나는 청주라도 올린다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주 가운데는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경북 경주의 교동법주와 충남 한산의 소곡주다. 교동법주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공식적인 행사에서 사용한 술로, 빚는 날과 빚는 법을 지켜 술을 담근다고 해서 ‘법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주 교동의 최씨 집안에서 찹쌀과 밀로 만든 누룩으로 만드는데, 16~18도 정도로 맛과 향이 좋다. 금복주에서도 경주법주가 나오는데, 일반 멥쌀로 만든 경주법주와 찹쌀로 빚은 ‘화랑’이 있다. 최근 화랑은 달고 묵직한 맛으로 경상도뿐 아니라, 서울 등 다른 지방의 술꾼들까지 사로잡고 있다.
충남 서천의 한산 소곡주는 백제 때부터 빚어졌다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술이며, 경주법주와 함께 대표적인 청주다. 역시 달고 부드러운 맛이 뛰어나 한번 마시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고 해서 ‘앉은뱅이술’이라고도 한다. 조선 중기부터 빚어지기 시작한 전남 해남의 진양주는 13도 안팎의 청주로, 취기가 은은해 머리가 아프지 않으며 경주법주보다 강한 향이 난다. 이 밖에 충남 면천의 두견주, 밀양의 교동방문주, 국순당의 백세주 등이 청주 또는 약주(청주에 약초 등 다른 재료를 첨가한 것)에 속한다.
청주처럼 차례상에 잘 올리지 않지만, 추운 겨울에 즐겨 마시는 술이 소주다. 소주는 고려 때 몽골군이 갖고 들어와 평양, 안동, 제주 등 몽골군의 주둔지가 명산지다. 경북 안동 지방의 안동소주가 대표적이다. 안동소주는 1920년 ‘제비원 소주’라는 상표로 유명해졌으나, 1962년 군사정부의 양곡관리법으로 명맥이 끊겼다가, 1990년부터 다시 제조되고 있다. 안동시 신안동의 조옥화(87)씨가 기능보유자이며, 그 밖에도 몇 회사에서 만들고 있다. 술의 도수가 45도로 높지만 쌉쌀한 맛이 깊다.
문배주는 처음에 평양에서 만들어졌지만 현재는 1950년 전쟁 때 서울로 이주한 이경찬씨의 아들 이기춘씨와 손자 이승용씨가 5대째 만들고 있다. 중국의 고량주처럼 수수를 넣어 빚은 술이어서 맛이 달다. 도수는 40도짜리와 23도짜리가 함께 나온다.
또 몽골군의 일본 공격 기지가 있었던 제주에는 고소리술이라는 좁쌀 소주가 남아 있다. 전라도에서는 진도의 홍주와 영광의 법성포 토주가 이름난 소주들이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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