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성주고, 백년설 노래비·흉상 건립공사
농민회 등 “학생들 역사관에 혼란” 중단 요구
농민회 등 “학생들 역사관에 혼란” 중단 요구
경북 성주농민회와 성주여성농민회, 전교조 성주지회 등 단체 회원 40여명은 29일 오후 2시 성주군 성주고 정문 앞에서 “학교 교정에 친일가수 백년설의 흉상과 노래비가 건립되고 있어 학생들의 교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우려가 크다”며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성주고 동창회는 5월30일 모교 교정에 백년설의 흉상과 노래비를 세우기로 한 이사회 결정에 따라 공사가 진행중이며, 다음달 10일 제막식을 열 계획이기 때문이다. 주설자 동창회장은 “동문들이 모교를 빛낸 국민가수 백년설의 흉상과 노래비를 세우는 것에 적극 찬성해 정부의 지원 없이 동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건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반대단체들은 “백년설은 일제강점기인 1941년 지원병제가 실시되면서 <혈서지원> 등 지원병으로 참전할 것을 독려하는 친일가요를 여러 곡 불렀으며, 해방 이후에도 친일행적에 대한 자기반성과 자숙은 하지 않고 오히려 1958년 대한가수협회 회장과 1961년 한국연예협회 기획분과위원장을 맡아 자기 안위와 명예를 누렸다”고 주장했다.
또 “친일파 대중가수의 흉상과 노래비를 공립학교 교정에 세운다는 것은 학생들의 역사관 정립과 도덕성 함양에 상당한 혼란을 주게 될 끔찍한 일인데도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교조 성주지회장 최봉규(42·성주고) 교사는 “꼭 흉상을 세우려면 일제에 항거하다 숨진 교육자 장기석 선생의 것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백년설(1915~1980)은 1938년에 가수로 데뷔해 <나그네 설움>과 <번지 없는 주막> 등의 가요를 불러 인기를 얻었지만 1941년 이후 친일가요를 많이 불러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포함돼 있다. 그는 성주고의 전신인 성주농업보습학교(4회·1931년)를 졸업했다.
강희락 경찰청장과 이상희 전 건설부 장관, 도승회 전 경북도교육감 등이 성주고 출신이며, 백년설 추모사업추진위원장인 이 전 장관은 최근 펴낸 백년설의 일대기 <오늘도 걷는다마는>에서 ‘누구보다 민족을 사랑한 가수 백년설이 일제 말기에 강요에 의해 친일가요를 불렀다는 이유로 친일파로 매도되는 것이 안타까워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성주고에서 4㎞쯤 떨어진 성밖 숲에는 이미 백년설의 노래비가 서 있으며, 한때 백년설가요제도 열렸지만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로 중단된 상태다.
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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