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의 좌절을 딛고 입문 10년 만에 첫 전시회를 여는 서양화가 권진씨. 상계갤러리 제공.
병마딛고 첫 전시회 연 권진씨
류머티즘에 두번의 교통사고 뒤 오뚝이처럼 일어서
그림으로 치유…“힘든 이들에 위로엽서 띄우는 심정”
류머티즘에 두번의 교통사고 뒤 오뚝이처럼 일어서
그림으로 치유…“힘든 이들에 위로엽서 띄우는 심정”
“아프고 힘들어 하는 이들한테 나의 그림이 위안을 주었으면 좋겠어요.”
서양화가 권진씨가 16~21일 광주시 동구 궁동 예술의 거리 상계갤러리에서 ‘자서전을 쓰다’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연다. 권씨는 전시회에 ‘생명’ ‘솟아오르다’ ‘깊은 그리움’‘또 다른 희망’ 등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유화 30여점을 선 보인다.
권씨는 소녀시절 화가를 꿈꿨다. 중학교 미술반에 들 정도로 관심이 높았지만 끝내 미술대학에 가지 못했다. 이후 꿈을 접고 평범하게 살던 30대에 뜻하지 않은 병마가 찾아들었다. 1993년 이유 없이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전신 류마티즘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뼈마디를 후벼파는 통증 탓에 움직이는 게 힘들었다. 소매에 단추를 채우고 이불을 당겨 덮는 간단한 동작조차 도움을 받아야 했다. 독한 치료약을 한움큼씩 쓸어넣어도 회복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눈물겨운 투병생활을 하던 권씨는 95년과 98년 잇따라 교통사고를 당하는 불행을 겪었다. 머리 팔 다리 등에 중상을 입고 2년 남짓 입원치료를 해야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인생이 끝난 줄 알았다.
“가족들한테도 아프다는 말을 꺼내기 어려웠어요. 날이 갈수록 사는 게 무서워졌어요. 도무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으니깐요.”
교통사고로 골절된 팔다리가 아물 무렵인 2000년 가을 병상에 누워있던 그는 문득 이루지 못한 ‘꿈’을 기억해냈다. 그길로 안면이 있던 서양화가 박구환씨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이왕 죽을 바엔 그림을 그리다가 죽으면 행복할 것 같았어요. 기초가 없으니 선긋기부터 시작해서 한해 내내 데생에만 매달렸지요.”
그림에 빠져들면서 권씨한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림으로 마음을 속시원하게 표현할 수 있어선지, 불편한 오른손으로 붓질을 고집해선지 통증이 점차 완화되어갔다. 그는 그림이 가진 ‘치유의 마력’을 온몸으로 느끼며 생명의 환희를 담아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화판에 마사토를 발라 말린 뒤 물감을 여러번 덧칠해 질감을 드러내는 기법을 익히는 데도 공을 들였다. 그림패인 진크회, 사생회 등지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이런 노력으로 세계평화미술대전과 여성미술대전 등지에서 20여차례 입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입문 10년만에 첫 전시회를 마련한 권씨는 “고통에 무너지지 않고 화판 위에서 마음껏 날고 춤출 수 있어 행복했다”며 “절망하는 이들을 향해 위로과 격려를 담은 그림엽서를 띄우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입문 10년만에 첫 전시회를 마련한 권씨는 “고통에 무너지지 않고 화판 위에서 마음껏 날고 춤출 수 있어 행복했다”며 “절망하는 이들을 향해 위로과 격려를 담은 그림엽서를 띄우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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