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재개발로 사라지고 있는 피맛골의 원형을 보존하는 수복형 재개발 방식이 도입된다. 광화문 교보타워 뒤쪽의 피맛골 모습. 서울시 제공
서울시, 옛 분위기 유지하는 재개발 추진
종로~돈화문로 중 이미 철거된 0.9㎞ 제외
종로~돈화문로 중 이미 철거된 0.9㎞ 제외
조선시대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 고관 대작들의 행차는 늘 시끄럽고 번거로웠다. “대감님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라는 호령에 길만 비켜서는 안되었다. 행차가 끝날 때까지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려 예를 표해야 했다. 이런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한성 종로에는 서민들 만의 길이 있었다. ‘피맛골’ 또는 ‘피맛길’이 그것이다. ‘말을 피하는 골목길’이라는 뜻의 이 길은 지금의 종로1가에서 6가까지 큰 길 양쪽으로 늘어선 시전행랑 뒷편으로 나 있었다. 말 한 마리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이었지만, 서민들은 이 길을 통해 방해를 받지 않고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 도성을 가로지를 수 있었다.
지금은 종로의 북쪽, 그 가운데서도 일부 구간에만 피맛골이 남아 있지만, 처음부터 이 골목길은 종로의 북쪽과 남쪽 양쪽에 모두 조성돼 있었다. 일제 강점기 이후 도로 확장과 철거 위주의 개발로 남쪽 길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북쪽도 종묘 앞은 공원이 들어서면서 상당부분 사라졌다.
지난 600년동안 피맛골은 서민들의 거리였던 탓에, 이곳에는 싸고 푸짐한 선술집, 국밥집들이 많이 들어섰다. 1930년대 중반 종로1가에서 동대문까지 이 길을 따라 약 220개의 선술집이 성업하였다고 전해진다. 또 일제 강점기 이후 궁중음식을 관장하던 사람들이 궁권밖으로 나와 이 일대에 명월관, 태화관, 국일관 등 큰 음식점을 차리면서 피맛골 일대는 먹거리 대표지역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피맛골은 2003년 서울시가 이 일대 재개발을 허가하면서 하나둘 철거됐다.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종로 2가 사이 0.9㎞구간은 피맛골을 철거하고 주상복합 건물을 짓는 사업이 이미 끝났거나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다.
사라져가는 피맛골이 원형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재개발 될 전망이다. 서울시는 종로와 돈화문로 사이 3.1㎞ 피맛골 가운데 교보빌딩에서 종로2가 사이를 뺀 나머지 2.2㎞ 구간을 ‘원형 보존 재개발 구간’으로 지정해 관리하겠다고 19일 밝혔다.
이 구간은 기존의 모습과 분위기를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건물을 완전히 철거하는 전면 재개발 방식이 아닌, 일부 구간만 다듬고 손보는 리모델링 방식으로 재개발된다. 서울시는 85억원을 들여 이 일대 보도, 하수도, 가로등, 전신주, 광고물 등을 정비하고 구간별 특성에 맞게 분위기를 연출할 방침이다. 또 이미 구역 지정이 끝나 철거 재개발이 진행중인 구간(청진·공평구역)도 골목길만큼은 원래 모습에 가깝게 유지할 수 있도록 원설계자와 협의해 지구별 건축계획에 반영할 계획이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피맛골 원형보존 재개발 구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