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수출현황
1910년대 천명당 1개꼴…60년대부터 내리막
지난해 증가세 돌아서…품질개선 연구 한창
지난해 증가세 돌아서…품질개선 연구 한창
막걸리 열풍과 함께 잊혀졌던 양조장들도 하나둘씩 되살아나고 있다.
술도가로도 불렸던 양조장은 지역 전통 문화의 한 뿌리였다. 예나 이제나 술을 한잔 걸쳐야 무르익은 얘기와 춤·노래가 나오기 때문이다. ‘양조장 집’은 ‘방앗간 집’, ‘과수원 집’과 함께 지역 유지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그 수를 정확히 헤아릴 수 없지만, 보통 마을마다 소주와 청주, 막걸리를 빚는 술도가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6년 통계를 보면, 전국에 2만8000여곳의 양조장이 있었다. 물론 가내 수공업 수준의 소규모 양조장들이었지만, 당시 인구가 2000만명 정도였던 것에 견주면 놀랄 만한 숫자다.
우리 전통 술은 두 차례 큰 타격을 입었다. 일제가 1909년 주세법과 1916년 주세령을 통해 일정한 시설을 갖춘 곳에서만 술을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이 첫 번째였다. 두번째는 1965년 박정희 정부가 양곡관리법을 제정해 쌀로 술을 만들지 못하게 한 일이었다. 특히 두 번째 조처로 수많은 술도가들이 문을 닫았고, 전통 술의 명맥이 끊겼다. 막걸리 양조장도 1970년대 2500여곳, 80년대 1300~1400여곳, 90년대 1000여곳으로 급격히 줄더니, 2000년대 들어서는 세 자릿수로 떨어졌다.
국세청이 집계한 주류 제조 면허 현황을 보면, 2003년 888곳이었던 양조장은 2004년 864곳, 2005년 813곳, 2006년 782곳, 2007년 778곳으로 꾸준히 줄다가 지난해 780곳으로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수출도 2004년 2245t에서 2006년 3764t, 2008년 5457t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 국세청 주세1과 박상율씨는 “국내에서 막걸리 열풍이 불고, 일본 등으로 수출이 늘면서 양조장 감소세가 돌아서고 있다”고 말했다.
양조장들의 성장과 체질 개선도 눈에 띈다. 지난해 대표적 전통술 제조업체인 국순당이 막걸리 시장에 진출했으며, 서울의 막걸리 시장을 이끄는 서울탁주는 진천에 8700평 규모의 현대적 양조 시설을 짓고 있다. 전통술 육성을 지원하는 국세청 기술연구소 김형식 과장은 “재래식 양조장이 전통의 맛을 잇고 현대식 양조장들은 연구·개발로 품질을 높이고 표준화하고 있다”며 “신구 조화로 막걸리의 인기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천/오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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