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당시 울부짖음 어떻게 잊을수있나”
1977년 11월 전북 이리역 폭발사고 당시 익산에서 열린 국제 세미나에 참석해 현장에 있었던 외국인들이 사건 발생 32돌을 맞아 익산시민의 안녕을 바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당시 원광대 교수로 세미나를 주관한 이성택 군장대 석좌교수에게 필리핀 아시아경영대학원(AIM) 교수였던 퀸틴 등 5명이 각각 전자우편과 영상을 최근 보내온 것이다.
퀸틴 등은 당시 익산역 앞 명보여관(현재 노인요양병원)에서 ‘농산물 유통 개선 방향’을 주제로 한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사고를 겪었다. 이 행사는 미국에 본사를 두고 후진국을 돕던 아시아재단이 5만달러를 지원해 이뤄졌다.
퀀틴은 편지와 영상을 통해 “우리를 괴롭혀 온 이리역 사건의 울부짖음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느냐”며 “익산시민의 영원한 번영을 빈다.당시 실수로 사고를 낸 호송원의 안부도 걱정이 된다”고 전해왔다.
이 교수는 “외국의 농산물 유통 성공사례를 발표하기 위해 농도이자 교통요지인 이리(익산)에서 행사를 열었던 것”이라며 “외국인들이지만 사선을 넘어 살아남은 특별한 관계라 해마다 이맘때 연락을 한다”고 말했다.
이리역 폭발사고는 1977년 11월11일 밤 9시15분께 일어나 59명이 숨지고 1342명이 다친 대형참사였다. 당시 인구 13만명의 이리시민 대부분은 저녁식사를 마친 뒤, 한국과 이란의 월드컵축구 예선전을 관람하고 있었다. 익산시사는 사고 기관차의 파편이 700m까지 날아가 집을 부쉈고, 반지름 8㎞안 유리창이 모두 깨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수송원 신아무개(당시 38살)씨가 술을 마신 뒤 열차 안에 촛불을 켜놓았다가 이 촛불이 화약상자에 옮겨 붙으면서 모두 30.28t에 이르는 화약이 폭발했다. 코미디언 고 이주일씨가 역 근처의 옛 삼남극장에서 공연하던 가수 하춘화씨를 구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1일 오후 2시 익산역 광장에서는 이리역 폭발사고 희생자 추모식이 열렸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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