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박물관, 사료집 펴내
“매번 전복 캐는 수고로움을 생각해보니 어찌 전복을 먹을 생각이 나겠는가. 하물며 공물로 바치는 전복값이 단 수십량이라고 하다니!”(정조의 <홍재전서>)
조선시대 정조(1752~1800)는 제주해녀들이 목숨을 걸고 캐내는 전복을 진상하는 것을 안 뒤에는 다시는 전복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고난과 강인한 생활력의 대명사인 제주해녀들은 역사에 어떻게 비쳐졌는가.
제주해녀박물관이 해녀들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한 작업의 하나로 옛 문헌이나 과거 신문자료 가운데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자료들을 선정해 <제주해녀 사료집>을 펴냈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어사 김상헌의 <남사록>, 제주목사 이원진의 <탐라지>, 이증의 <남사일록> 등 옛 문헌과 개인 문집류에는, 진상품으로 전복을 채취해 바쳐야 했던 해녀들의 고난에 찬 삶에 대한 기사와 전복의 종류와 수량이 잘 나타나 있다.
김춘택의 <북헌거사집> 등의 개인문집에 실린 해녀에 대한 기사에서는 당시 해녀들의 작업실상이 잘 드러나고 있다. 제주목사 이건은 1629년 <제주풍토기>에 “해녀들은 생전복을 채취해 관가에 바치고, 그 나머지를 팔아서 의식을 해결하고 있다. 그들의 생활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못된 관리가 욕심을 내면 1년간의 조업으로도 관청의 요구에 응할 수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1930년대 초 일제의 수탈에 맞서 생존권 투쟁을 벌였던 제주해녀항쟁 등에 관한 당시의 국내 신문기사들은 해녀들의 강고한 단결력과 이들의 해녀투쟁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1950~70년대의 지역 일간지에는 다른 지방으로 출가한 해녀들이 그 지역에서 겪는 어려움과 분쟁, 어장관리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제주해녀박물관 쪽은 “해녀사료집이 해녀문화의 역사적, 학문적 기초자료로 활용돼 해녀문화의 보존 필요성을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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