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식 제주4·3연구소장 현대사 전공
2010년 새해를 맞이했다. 올해는 전통 왕조시대에서 근대 국민국가의 시대로 향하던 한국 역사 발전의 길을 일제가 막아서고 강점해버린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와 ‘대동아공영’(大東亞共榮)의 논리로 지난 100년의 절반 가까이 동아시아의 운명을 좌우했다. 근대화라는 미명은 왕조를 벗어난 민족과 국가에게 반드시 거쳐야 할 지상 목표였지만, 식민지시기의 그것은 민족의 자립과 자존(自存)을 위해서는 극복하여야 할 대상이었다.
‘근대와 식민지, 민족’은 지난 100년을 지배해온 주요 담론이었다. 최근 ‘탈근대와 탈식민지, 탈민족’을 애써 강조하는 한국 문화사상계의 흐름은 아직도 이들 거대 담론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역설에 다름 아니다.
일제 강점 100년을 맞이하는 동아시아의 한 섬 제주도는 과거 그 시대를 어떻게 맞이했는가? 제주도 역시 ‘근대와 식민지, 민족’을 경험하였다.
개항에 따른 일본 어민의 어장 침탈, 외래 종교 유입에 따른 문화충돌로서 ‘이재수 난’의 발발, 일제 강점에 따른 수많은 제주도민의 디아스포라, 강력한 항일민족운동의 전개, 태평양전쟁 시기 징병·징용·노역 등 강제동원, 해방 직전 조선인 징병자 1만5000여명을 포함해 6만5000여명에 이르는 일본군의 제주도 주둔 등 근대화와 식민지화의 역사적 과정을 한반도 주민들과 똑같이 거쳤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은 민족과는 층위가 다른 지역주민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갔다. 일본 어민의 어장 침탈 때문에 해녀들은 돈을 벌기 위해 전국 각 지역, 일본·중국·연해주 등으로 출가 물질에 나섰다. 섬 안에서 살길이 막막한 수많은 제주 청년들은 일본 오사카의 공장을 찾아 제주바다를 건넜다.
서울이나 일본으로 유학한 청년엘리트 가운데 사회주의·자유주의·아나키즘 등 신사상을 수용한 상당수의 민족운동가가 배출되었다. 이제 제주사람들은 제주도 안에 갇혀 살지 않고 밖에서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나갔다. 조선시대에는 상상해 보지도 못했던 제주도 밖으로의 활발한 진출은 제주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수백년간 섬 안에 갇혀 있던 제주도민들에게 일제 강점은 억압과 착취로 다가왔지만 동시에 중앙 왕조에 얽매여 있던 굴레를 벗어나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의 시대이기도 했다. 제주도민들에게 일제 강점은 국민국가의 건설과 더불어 자율적 지역공동체를 이루어내려는 역설적 동기를 부여했다고 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발전을 선도하고 지역을 성장시켜 나가기 위한 ‘제주특별자치도’의 ‘특별한 제주자치도민’이라면 일제 강점의 최악의 상황에서도 바깥으로 눈을 돌려 나라와 지역을 살려나간 할아버지·할머니, 우리 부모세대들에게 한수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박찬식 제주4·3연구소장 현대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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