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엽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 시민감시국장
전북지역 중소상인들은 최근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다. 지난달 31일 새벽, 어수선한 세밑 분위기를 틈타 롯데슈퍼가 전북 전주시 송천동에 있는 지역슈퍼를 인수해, 간판을 바꿔 달고 영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무차별적으로 골목 안까지 진출해 지역경제의 뿌리를 무참히 파괴하고 있다.
지난해 상인과 시민단체들은 기업형 슈퍼로부터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이뤄 정부와 국회에 법률을 개정해 달라고 호소했다. 국회에선 현재 관련 법률의 개정 논의가 진행중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대기업은 마치 첩보전을 연상케 하는 수법으로 상권을 장악해가고 있다. 이번에 기습적으로 개점한 롯데의 행위는 더욱 씁쓸하다. 이익이 나면 무엇이든 하는 천박한 모습을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경기침체로 영업난에 시달리는 주변 상인들은 롯데슈퍼의 간판 바꿔달기로 더욱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 특히 매장에 이미 진열한 제품을 철수하라고 통보를 받은 지역 납품업체들은 납품처를 잃고 하나둘씩 고사하게 됐다. 이는 그동안 롯데가 만든 제품을 유통시켜온 은인에 대한 배신이다. 상인들은 롯데슈퍼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상인들을 내팽개쳐도 아무런 대응을 할 수가 없다. “기본적인 상도덕이라도 지켜달라”는 하소연도 이제 아무런 소용도 없게 되고 말았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으로부터 주변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지역슈퍼마켓조합은 사업조정을 신청했다. 그러나 조정기간이 한없이 길어 상인들을 실질적으로 구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애초에 대기업 슈퍼의 진출과 영업에 대한 제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번 같은 기습 개점 사태를 막아내기가 어렵다. 법률을 개정하지 않고는 골목상권을 초토화시키는 자본의 횡포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
동네 슈퍼를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한 한 상인은 이렇게 말했다. “물건 하나 더 팔면 기분이 좋아 동네 통닭집에서 맥주 한잔이라도 하게 되고, 그래서 통닭집이 잘되면 지역 부식배달 업체도 잘된다.” 이 평범한 얘기 속에 건강한 지역경제 순환의 원리와 진짜 민생 살리기 방법이 함축돼 있다. 정부와 국회는 대형마트·기업슈퍼의 입점 제한, 영업시간, 품목 제한을 위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중소상인이 살아야 지역경제가 살고, 나라경제도 산다.
이창엽 참여자치 전북시민연대 시민감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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