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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선술집 ‘희로애락 65년’ 박물관으로

등록 2010-02-04 23:22

 1945년 문을 연, 피맛골에서 가장 오래된 빈대떡 막걸리집인 청일집이 제자리를 떠난다. 문인이나 언론인, 정치인들이 자주 찾았던 청일집은 피맛골의 대표적 선술집으로 55년 동안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현재 청일집은 5일까지만 문을 열고 8일부터는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건물로 옮겨간다. 4일 밤 청일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시민들의 모습.  김경호 기자 jijaeQhani.co.kr
1945년 문을 연, 피맛골에서 가장 오래된 빈대떡 막걸리집인 청일집이 제자리를 떠난다. 문인이나 언론인, 정치인들이 자주 찾았던 청일집은 피맛골의 대표적 선술집으로 55년 동안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현재 청일집은 5일까지만 문을 열고 8일부터는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건물로 옮겨간다. 4일 밤 청일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시민들의 모습. 김경호 기자 jijaeQhani.co.kr
‘청일집’ 피맛골에서 마지막 영업
내려앉은 골목 사이로 칼바람이 불었다. 사람들은 언 몸을 움츠리고 골목 앞을 분주히 오갔고, 맥없이 깨진 건물에는 천 가림막이 아무렇게나 내걸려 있었다. 4일 오후, 재개발로 사라지고 있는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뒤 피맛골은 황량했다.

“여기서는 내일까지만 장사해. 다음주(8일)부터는 ‘르메이에르’로 옮기지. 이런 데서 덜그럭거리면서 먹는 거 좋아하면 지금 먹는 게 좋아. 이제 여기서는 먹고 싶어도 못 먹어.” 선술집 ‘청일집’ 주인 박정명(69)씨가 저녁 장사를 앞두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박씨는 40여년 전 아버지 박동현씨에게 이 상가를 물려받았다. 입구 왼쪽에 걸어놓은 종로구청장 명의의 ‘영업신고증’이 그 세월을 증언이라도 하듯 새까만 때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청일집은 1945년 광복 직후 문을 열었다. 피맛골 선술집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족발, 해물파전, 생굴전, 조개탕, 낙지볶음, 두부김치, 순두부 등을 팔지만,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단연 녹두빈대떡과 막걸리다. 박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 때는 청와대에서 녹두가루를 사갈 정도였다”고 말했다. 녹두빈대떡은 녹두를 갈아 대파, 양파, 양배추 등과 다져, 돼지기름을 불판에 두른 뒤 부쳐낸다. 한 접시에 1만원이다. 20년 전만 해도 박씨가 맷돌로 직접 녹두를 갈았지만, 손님이 늘어나면서 언제부턴가 전기맷돌을 들였다.

이곳은 종로 주변 직장인을 포함해 문인, 언론인 등이 찾아와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삶의 애환을 풀던 곳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종로구 국회의원 시절, 부인 권양숙씨와 함께 이곳을 다녀갔다.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벽지에 그들만의 작은 기록을 남겼다. 그림을 그린 아이, 시를 쓴 문인, 사랑을 속삭인 연인 등 그 흔적들은 오랜 시간 바래고 더해지면서 고스란히 역사가 됐다.

그 역사를 뒤로하고 청일집은 65년 만에 인근 주상복합 건물인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으로 자리를 옮긴다. 5일이 마지막 영업이다. 이제 옛 모습은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게 됐다. 새 건물로 이사하면서 오래도록 손님들이 사용해온 탁자, 의자, 막걸리잔, 주방용품, 벽지 등 1000여점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은 피맛골의 역사를 기록하는 차원에서 이곳의 생활도구들을 영구 보존하고, 오는 7월 열리는 (가칭)‘우리들의 종로’ 전시회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박씨는 “가게를 옮긴다고 하니, 안타까워하는 손님들이 많아 맘이 쓰인다”고 말했다. 피맛골에 모여 있던 식당들과 선술집은 대부분 헐렸다. 무너진 골목에는 청일집을 비롯해 대림집, 소문난집 등 단 세 곳만 남았다. 박씨는 이곳에서의 마지막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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