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종의 ‘표해일기’
제주박물관, 양우종의 ‘표해일기’ 공개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제주사람들이 이국 땅으로 표류하는 일이 있었다. 1893년 12월17일 제주 조천에서 당시 절충장군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던 30살의 양우종을 포함해 선주와 소와 말 상인 등 15명이 탔던 배도 그런 배 가운데 하나다. 추자도를 지나 진도 근처에 이르렀을 때 거친 폭풍우에 돛과 노를 잃어버리고 표류하기 시작한 배는 일본 류큐(오키나와) 부근의 도리시마까지 표류했다. 평소 병사를 훈련시키며 바닷물로 생존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양우종은 바닷물을 끓여 소금과 물을 만들고, 소와 말을 잡아 먹으며 동료들과 20여일을 버텼다. 이들은 1894년 1월1일 류큐의 도리시마에 이르렀고, 이어 도쿠노시마~류큐~가고시마~나가사키~부산~마산~해남을 거쳐 이듬해 3월10일 제주로 돌아왔다. 이를 바탕으로 양우종은 <표해일기>(사진)를 썼다. 제주에는 고기잡이나 공물 운반 등을 위해 다른 지방으로 나가다 폭풍을 만나 중국과 일본, 심지어 베트남까지 표류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있었다. 당시 제주 표류민에 대한 동아시아 지역 주민들의 태도는 우호적이었던 것 같다.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 제주에 왔다가 일본과 대만, 베트남으로 표류했던 제주사람들을 인터뷰한 18세기 지식인 정운경의 <탐라문견록>에도 당시 제주의 표류민들에게 음식과 옷, 돈을 내주며 환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양우종도 <표해일기>에서 “(도리시마) 관리가 불쌍히 여겨 병자에게는 약을, 목마른 자에게는 물을, 굶주린 자에게는 음식을 주고 여관으로 인도하니 몹시 어두운 지경을 벗어나 다시 태양의 밝음을 보는 것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양우종은 “(류큐국에서는) 저녁밥을 주는데 생선과 고기에 술을 차린 진수성찬이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이 오고 가는데 예의범절을 지키고 정중했다”고 적고 있다. 국립제주박물관은 지난 2월 양우종의 손자 양경두 선생이 기증한 <표해일기>를 21일부터 기증실에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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