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촌호수 서쪽 언덕으로
병자년(1636년) 음력 12월14일. 수도 심양을 떠난 청의 10만 대군은 10여일 만에 송도(지금의 개성)를 지나 한양으로 진격했다.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했고, 청 태종은 남한산성에 20만 군사를 포진시켰다. 이 고립무원의 산성에서 군신들은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라는 말의 다툼을 벌였고, 인조는 47일을 버텼다.
식량이 떨어져가고, 세손과 비빈이 피란간 강화도가 함락되자, 인조는 산성 서문을 나와 삼전도로 향했다. 삼전도는 서울 도성에서 송파에 이르는 한강나루로 1950년대까지 나룻배가 다녔으나, 1970년대 이후 한강 개발로 사라졌다. 이곳에서 청 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고개를 조아렸다. 항복의 예였다. 임금은 머리를 땅에 찧으며 절했고, 절할 때 풍악이 울려퍼졌다.
삼전도비(사적 101호)에는 ‘삼전도의 굴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비석의 원래 이름은 삼전도청태종공덕비다. 1639년 세워진 이 비에는 조선이 청에 항복하게 된 경위와 청 태종의 침략행위를 공덕으로 찬양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삼전도비는 청일전쟁 뒤 청의 세력이 약해지자 1895년 고종의 명으로 강 속으로 묻은 뒤 일제강점기인 1913년 다시 세워졌다. 이 후 1956년 다시 땅속에 묻혔다가 1963년 홍수로 모습이 드러나면서 다시 세워졌고, 2007년에는 붉은 페인트로 훼손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이 삼전도비가 제자리를 찾는다. 서울 송파구는 “고증을 거친 끝에 지금 송파구 석촌동 289-3번지 일대에 있는 삼전도비를 오는 25일 원래 자리인 송파구 잠실동 47번지 석촌호수 서쪽 언덕으로 옮긴다”고 22일 밝혔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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