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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70년 세월 빼곡히…‘영단주택’ 헐리나

등록 2010-04-25 21:03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일대에 남아 있는 영단주택 현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일대에 남아 있는 영단주택 현장.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일제때 서울 문래동에 지은 첫 대형 주택단지
재개발 조짐에 “역사·문화공간 보존” 목소리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삼원 나우빌 아파트 15층 창문에서 정면을 바라보니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 펼쳐졌다.

눈앞에는 비슷비슷한 지붕을 가진 일제 때 단층 건물 500여채가 반듯하게 줄을 맞춰 도열해 있었다. 500채를 중심으로 주변에 빽빽이 들어선 아파트들은 이 낡고 낮은 집들을 집어삼킬 듯 하늘 높이 뻗어 있었다. 지난 2월25일 현장취재에 동행한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현 문화재 전문위원)는 “1940년대 초반 지금의 주택공사에 해당하는 조선주택영단에서 지은 노동자 주택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영단주택은 당시 대규모 단지형 주택의 최초 모델이었다.

영단주택 단지 안으로 들어서니 ‘태안산업’, ‘홍성기공’, ‘동진연마’ 등의 간판을 단 10~15평짜리 소규모 공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목수로 일하며 50년 가까이 살았다는 주민 당윤옥(75)씨는 “60년대 초에 여기서 자리잡자마자 일본식 집 구조를 한식으로 바꿔주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자랑했다. 이곳의 집들은 대부분 당씨 같은 목수들의 손을 거쳐 용도에 맞게 개조돼 왔고, 주택·시장·공장 등 수많은 변형을 거쳐 우리네 삶의 현장이 되어 있었다. 안 교수는 “개발 붐으로 이곳의 역사가 모두 사라져버리기 전에 한두 블록만이라도 남겨둬야 한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문래동 영단주택은 주택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1942년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3·1운동 뒤 도시로 이동하는 농민층이 급격히 늘었고 한국으로 유입되는 일본인 수도 많아졌다. 1930년대부터는 일본이 한국을 병참기지로 설정하면서 군수산업이 발달해 노동자들의 주택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이런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41년 조선총독부가 세운 것이 바로 조선주택영단이며, 조선주택영단에서 만든 것이 바로 영단주택이다. 서울에는 대표적으로 문래동, 상도동, 대방동 등에 영단주택이 건립됐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500채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문래동 영단주택은 아마추어 사진작가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보기 드문 근대의 모습을 사진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안창모 교수는 “일제 때 지어져 지금은 곳곳이 폐허가 됐을 법도 한데 여전히 빈집이 거의 없을 정도로 활용이 잘 되고 있다”며 “일제강점기부터 경제성장기를 거쳐 현재까지 도시 주거의 흥망성쇠가 담겨 있는 이곳을 개발 전에 일부만이라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도 “지금의 저밀도 산업시설을 그대로 둔 채 한쪽을 문화예술창작공간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기존 모습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곳도 이미 소유주들을 중심으로 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 주민 당윤옥씨는 “몇 년 전부터 일부 소유주들이 주축이 돼 개발 추진위가 구성돼 활동중”이라며 “개발보다는 소규모 공장에서 받는 월세로 생활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수가 그리 많지 않다”고 전했다. 반대로 세입자들은 그대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


90년대 초 이곳에 정착한 뒤 2대째 공구사를 운영하는 송기봉(37)씨는 “이곳은 소규모 공장들이 밀집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며 “개발로 다른 곳으로 가기보다는 계속 이곳에서 장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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