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골목길은 단순히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길이 아니다. 이 길 위에서 사람들은 함께 어울리고 생각과 마음을 나눴다. 왼쪽부터 고 김기찬 작가가 담은 1978년·1983년·1990년의 서울 중구 중림동의 모습. 고 김기찬 작가 유족 제공
고 김기찬 사진전 27일부터
서울역사박물관서 열려
서울역사박물관서 열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은 골목길이 살아 있는 동네다. 저마다의 모습으로 들쭉날쭉 자리한 집들 사이로, 좁고 낮은 골목길은 굽이쳐 흐른다. 곧게 뻗은 길이 없고, 똑같은 모양의 길이 없다. 골목길은 집들 사이를 굽이굽이 흘러 실핏줄처럼 온 마을에 닿는다. 중구 중림동 일대도 이런 골목길이 살아 있다. 길을 먼저 닦고 그 길을 따라 집을 놓은 것이 아니라 집이 들어선 곳을 따라 길이 나다 보니, 길은 좁아지고 넓어지며 이어지고 또 끊긴다. 골목길은 단순히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길이 아니다. 사람들이 만나고 소식을 나누는 곳이다. 아이들은 이 길 위에서 뛰어놀며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어른들은 길 한쪽에 자리한 오래된 구멍가게나 미용실 등에 모여 호흡하고 소통했다. 서울에서 이런 ‘옛길’은 사라지고 있다. 중림동은 1997년 재개발로 사라진 지 오래고, 북아현동을 비롯해 옛길이 남아 있던 홍파동, 하왕십리동, 교남동, 길음동, 미아동 등 골목길도 뉴타운 등 재개발에 밀려 부서지고 있다. 옛길의 대명사 격인 종로1가 피맛골도 최근 재개발로 사라졌다. 이렇게 사라진 골목길을 사진으로나마 만나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고 김기찬 작가의 사진전 ‘골목 안, 넓은 세상’을 27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연다고 26일 밝혔다. 작가는 1966년부터 40여년 동안 중림동, 도화동, 행촌동 등의 골목길을 다니며 골목길과 그 안에 녹아든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의 작품 속에 담긴 골목길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은 이제 개발로 사라져 기록으로만 남게 됐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작가의 육필원고와 작가노트 등 유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전시기간 동안 매주 목요일마다 ‘도시와 골목’을 주제로 한 초청 강연회도 진행될 예정이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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