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안재홍 종로구의원이 서울 종로구 부암동 무계정사 터를 찾아 찍은 은행나무 모습(왼쪽). 21일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때 은행나무가 잘려나간 모습.
서울 종로구 부암동 352번지에는 몽유도원도의 배경이 된 무릉도원과 닮았다고 해서 조선시대 안평대군이 ‘무계정사’라고 이름붙인 그의 별장 터가 있다. 이곳에 있던 몇백년 된 고목 두 그루가 주민들의 보전 요구에도 아랑곳없이 최근 베어져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21일 현장을 찾았을 때, 잡초가 무성한 1100㎡ 크기의 공터 한쪽에 메마른 은행나무 그루터기 2개가 흙에 덮여 있었다. 이틀 전 땅주인에 의해 잘려나간 나무 잔재는 공터 한쪽에 쌓여 있었다. 밑동의 둘레를 재니 2m였다. 주민들 사이에선 이 나무가 200~300년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종로구는 무계정사 터를 포함한 부암동주민센터 일대를 개발하고 있다. 구는 지구단위계획 결정 단계에 있는 이곳을 문화 및 집회시설이나 주거시설로 지정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무계정사는 서울시 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제22호)이므로, 은행나무를 무단으로 자른 행위는 문화재보호구역 50m 이내 주변환경을 임의로 변경하지 못하도록 정한 서울시 문화재보호 조례 위반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종로구 이홍재 지구단위계획팀장은 “문화재보호 조례는 지구단위계획 단계에선 적용되지 않는다”며 “이 은행나무가 따로 ‘보호수’로 지정돼 있지도 않아 규제할 근거가 없다”고 해명했다.
안재홍 종로구의원(민주당)은 “1998년 을지로4가의 국도극장이 근대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을 우려한 건물 소유주가 국도극장을 철거해 논란이 된 것과 이번이 같은 경우”라며 “지구단위계획 단계라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구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글·사진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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