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상품 1포기가 1만원 이상으로 거래된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중앙시장에서 장을 보러 나선 주부들이 배추 등 채소 가격과 품질상태 등을 살피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현장/ 활기잃은 영등포시장
29일 낮 서울 영등포구 재래시장인 영등포시장에선 물건을 사고팔 때의 활기를 느낄 수 없었다. 주부들은 물끄러미 채소를 바라보거나 들었다 놨다 하기만 반복할 뿐이다.
한 반찬가게 주인 김순애(75) 할머니는 추석 연휴 뒤부턴 배추값이 너무나 뛰어 김치를 팔지 않았다고 했다. 근처 식당이 간절히 부탁해 어쩔 수 없이 배추 3포기를 4만원에 사다 김치를 담가 3만원치 팔고 남은 걸 스테인레스 대야에 내놓았다고 했다. “이거 다 팔아야 배추값 4만원 겨우 본전 뽑아.” 남은 김치만 팔면 배추값이 떨어질 때까지 김치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채소를 파는 최지명(57)씨도 “30년 장사하면서 이렇게 배추값이 비싼 적은 없었다”고 개탄했다. 배추 1포기를 1만2000원에 파는데, 남는 건 포기당 고작 500원이라고 했다. 쪽파 1단에 2000원 하던 것이 1만2000원, 양배추도 1포기 2000원짜리가 1만원으로 치솟았다. 최씨는 “정부가 가격을 떨어뜨려줘야 하는데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소리를 높였다.
소비자들은 ‘대체 식품’을 찾고 있다. 반찬을 사러 나왔다는 조옥순(55)씨는 말린 고사리를 보더니 “이거 삶으면 양이 많아진다”며 한묶음을 사고는 “요즘엔 멸치나 김을 자주 식탁에 올린다”고 말했다. 이옥자(68)씨는 “채소가 고기보다 비싸니, 이젠 생선을 사 먹는 일이 잦아졌다”고 했다.
한껏 속이 타는 쪽은 음식점 주인들인 듯했다. 시장 근처 ‘삼겹살 가게’는 최근 손님들에게 주는 상추를 10장에서 3~4장으로 줄였다. 가게 직원 유정숙(42)씨는 “산지에서 곧바로 공급받는데도 이렇게 비싼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포장김치 제조업계도, 대형 마트 같은 판매처도 비상이 걸렸다. 배추값 폭등으로 집에서 김치를 담그는 것보다 포장김치가 훨씬 싸게 먹히는 상황이 되면서 집집마다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하지만 포장김치 제조업계는 국산 배추 등 원재료 수급이 어려워 대형 마트와 홈쇼핑 등 주요 판매처에 공급 차질이 일어나는 상황이다. 국내 가정용 포장김치 업계 1위인 대상 종가집의 문성준 매니저는 “계약했던 배추 물량의 50%도 들어오지 않고 있고, 11월말 겨울배추 때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한시적으로 포장김치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계는 대형마트 등 주요 판매처와 가격 인상 협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조만간 포장김치 값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이경미 정세라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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