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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멧돼지의 난동’ 도심까지 휘젓는다

등록 2010-11-14 20:07수정 2010-11-15 08:36

주택가·도로 등 전국서 올해만 20여차례 출몰
날래고 눈치 빨라 포획 어려움…피해 잇따라
개발로 서식지 훼손되자 인간에게 ‘무력 시위’
멧돼지의 습격이 심상치 않다.

추수철 농작물을 마구 먹어 치우거나 파헤쳐 농민들의 속을 썩이더니, 요즘에는 도심까지 진출해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 5일 새벽 4시40분께 청주시 율량·우암동 주택가에 멧돼지 6마리가 나타나 상가 유리창을 깨는 등 난동을 부렸다. 사흘 뒤 이곳에서 500m 남짓 떨어진 내덕2동 한 아파트 단지에도 멧돼지가 나타나 아파트 상가 유리 출입문을 부수고 달아났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홍길동’ 멧돼지를 잡으려고 경찰, 공무원 등은 포수 10여명까지 동원해 포획에 나섰지만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박노대 청주시 자연보전 담당은 “야생에서 길들여져 몸이 날래고, 눈치가 빨라 포획이 쉽지 않다”며 “담배 냄새 등 후각이 워낙 발달돼 있어 접근조차 쉽지 않아 뒤만 쫓다 허탕을 쳤다”고 말했다.

6일 오후 전남 여수시 수정동 오동도 어귀에 무게 200㎏이 넘는 멧돼지가 나타나 관광객 등을 공포로 몰아넣었으며, 4일 새벽 5시께 대구 달서구 월성동 아파트 단지에도 멧돼지가 나타나 주민들을 위협하다 4시간 만에 경찰이 쏜 실탄에 맞고 붙잡혔다. 지난달에는 경남 창원(22일), 경기 고양(20일), 부산진구 당감동(7일) 등에 멧돼지가 나타났다. 지난 10일 서울 도봉구 쌍문동 등 서울 지역에서도 올해 네 차례 멧돼지가 나타나는 등 올해 들어 전국 도심에 20여 차례 멧돼지가 출몰했다. 멧돼지 출몰이 잦은 서울 도봉구는 이달 초 ‘멧돼지 주의보’를 내렸으며, 부산은 금정산 주변에서 멧돼지 포획 작전을 벌이는 등 자치단체들은 도심 멧돼지 습격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환경부는 자치단체, 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119 구조대 등과 ‘도심 출현 멧돼지 긴급 대응 체계’를 구축하고, 멧돼지와 맞닥뜨리면 △정숙할 것 △움직이거나 쳐다보지 말 것 △등을 보이지 말 것 등 대처 요령까지 발표했다. 환경부 자연자원과 조용재씨는 “멧돼지는 짝짓기 기간인 11~12월 성질이 난폭해져 유의해야 한다”며 “멧돼지를 만나면 대처 요령을 지킨 뒤 119 구조대 등에 바로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멧돼지는 주택가 주민뿐 아니라 도로 위 운전자도 위협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새벽 5시께 충북 음성군 음성읍 36번 국도에서 승용차를 몰고 가던 김아무개(45)씨가 도로로 뛰어든 멧돼지를 들이받은 뒤 차가 길옆으로 굴러 그 자리에서 숨졌다. 같은 달 29일 새벽 1시5분께 부산 기장군 일광면 부산~울산 고속도로 일광나들목 근처에서 화물차를 몰고 가던 오아무개(47)씨와 승용차를 운전하던 김아무개(56)씨가 길로 뛰어든 멧돼지를 들이받고 크게 다치기도 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전국 주요 도로 51곳에 생태통로를 설치하고, 경부고속도로 등 주요 도로 917.6㎞에 야생동물 유도 울타리를 설치했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에만 ‘찻길 동물 사고’(로드킬) 1176건이 발생하는 등 해마다 2천건 안팎의 사고가 나고 있다. 찻길 동물 사고는 고라니(62%), 너구리(25%) 등이 주 희생양이지만 최근 멧돼지까지 가세했다.

김진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연구원은 “자치단체, 도로공사 등이 야생동물 생태통로 등을 설치하고 있지만 멧돼지 등 야생동물의 찻길 사고를 막기 쉽지 않다”며 “야생동물의 이동 경로·행태 등을 정밀 분석해 통로 등을 설치하고,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산과 길의 중간 지대인 들판에 먹이를 놓아두는 등 완충지대를 만드는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촌 지역에서 멧돼지는 여전히 ‘공공의 적’이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조사한 2006~2009년 야생동물에 의한 농작물 피해액 616억7600만원 가운데 멧돼지 피해액이 259억3600만원으로 42%를 차지했다. 환경부는 멧돼지 피해를 줄이려고 포획 허가를 했으며,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2만171마리가 포획됐다.

멧돼지 피해가 늘고 있지만 전국 산야에서 멧돼지 수 자체가 늘어난 건 아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이 12일 밝힌 야생동물 서식 실태 조사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말 전국의 멧돼지 분포는 100㏊당 3.7마리였다. 이는 2002년 100㏊당 3.8마리, 2006년 4.6마리, 2008년 4.1마리 등에 견주면 오히려 줄었다.

한상훈 국립생물자원관 척추동물과장은 “멧돼지 포획을 허가하면서 개체 수는 정체하고 있지만 먹잇감이 부족해 여전히 농작물 피해가 많다”며 “멧돼지들의 잇단 도심 출현은 도로·도심 개발 등으로 서식지가 훼손되거나 서식 환경 파괴에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발에 앞서 생태계 질서 등을 면밀히 살피고 대책을 세워야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청주/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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