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대전 대덕구 안산도서관에서 이범식(84) 할아버지와 동대전고 2학년 고영주·남다희·남경민(왼쪽부터) 학생이 함께 했다. 김수진 교사 제공
동대전고 학생들, 노인들 위해 ‘자서전 써드리기’ 활동
지난 여름 17살 고교생 20여명이 때아닌 6·25 피란길을 떠났다. 연탄가스가 꽉 찬 방에서 신음도 했다. 기대·불안·어색·친근·아쉬움·후련함·섭섭함·시원함 등등을 느끼며 반년 동안 울고 웃었다. 학생들은 자서전 출간을 위해 할아버지·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며 60~70년 세월을 간접 체험했다.
대전 대덕구 동대전고 봉사동아리 ‘나눔’의 2학년생 회원들은 지난 6월부터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의 도움을 받아 지역의 ‘평범한 어르신’들을 섭외한 뒤 거의 매주 방문했다. 국어교사 김수진(27)씨가 동아리를 직접 만들고 앞장서 지난해에 이어 이태째 이끌고 있는 ‘어르신 자서전 써드리기’ 활동이다. 자서전 제작비는 대전평생학습관이 지원했다.
학생들은 조를 나눠 그동안 모두 60여 시간을 인터뷰하고 직접 원고를 써내려갔다. 막바지 편집 작업 때는 야간 자율학습도 빼먹고 밤늦게까지 매달려야 했다. 두달 남짓 고된 편집을 마친 뒤 <엄마의 일기> <송암 회고록> 등 5권이 완성되자 지난 3일 노인들을 모시고 복지관에서 조촐한 출판기념회도 열었다. 여느 책과 다름없는 진짜 자서전 5권이 함박웃음 가득한 노인들의 손에 들려 있었다. 곁에 선 학생들은 더 활짝 웃었다.
놀라운 일도 있었다. 앞을 전혀 못 보는 조아무개(74·경기 하남)씨는 지난해 11월 라디오에서 우연히 학생들의 자서전 선물 소식을 들은 뒤 ‘대전’자가 들어가는 모든 공공기관에 전화를 걸었다. 무려 1주일 동안 전화를 한 끝에 동대전고에 연락이 닿았고, 소식을 들은 김 교사와 학생들은 서둘러 ‘추가 제작’에 나섰다. 구술 녹음테이프를 우편으로 받아 넉 달 만인 지난 2월 500쪽에 가까운 자서전 한권이 더 완성됐다. 학생들은 어르신들의 삶에서 배운 점을 제작후기에 남겼다. “어르신 세대의 고통과 시련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자극적이고 소비적인 문화에만 익숙했던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신 어르신들께 고마워요.”
대전/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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