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철규씨
인권영상공모전 대상 선철규씨
“현병철 위원장 사퇴” 수상 거부
“현병철 위원장 사퇴” 수상 거부
스스로 지렁이라고 생각했다. 잘 때도 활동할 때도 누워 있기 때문이다. 뇌병변 장애 1급 선철규(33·사진·전북 전주시)씨는 지난해 5월 처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죽는 한이 있어도 나가고 싶었다”. 전북시설인권연대의 도움으로 12년동안 살았던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빠져나왔다.
‘차라리 집으로 가자’는 부모의 제안도 뿌리친 그는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체험홈 ‘느티나무’로 갔다. “두려움보다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꼈다. 소주방에도 가보았다. ‘침대같은 휠체어’에 누운 채 영화관도 갔다.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더 커서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 있었다”.
그는 또 다른 모험을 시작했다. 혼자 살아보고 싶었다. 지난 5월 체험홈을 나와 독립했다. 주변에선 “옆에서 도와줘야 하는데 어떻게 하려느냐”며 말렸다. 혼자서 전동 휠체어 운전을 연습했다. 누워서 운전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처음 스스로 이동하는 기쁨”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는 주택 방 한 칸을 얻어 장애인 활동 지원서비스를 받으며 ‘자취생활’을 하고 있다. 활동지원서비스는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에게 유급 보조원을 파견해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제도로 2007년부터 시행되고 있다.
선씨는 자신의 자립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겠다는 ‘장애 인(in) 소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장애인 5명과 비장애인 2명이 참여하는 전북의 영상 동아리다. 선씨는 기획에도 참여하고,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선철규의 자립이야기, 지렁이 꿈틀>이라는 제목의 다큐는 지난달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2010 인권영상공모전’ 대상 작품으로 선정됐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선씨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정부의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입법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지난 8일 한나라당의 날치기 소동 속에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한 ‘장애인활동지원법’이 통과되고 말았다. 활동보조 서비스 대상자를 1급 장애인으로 제한하고, 가구 소득을 기준으로 최대 15%까지 비용을 자가부담해야 하는 내용이다.
선씨는 10일 광주시 대인동 인권위원회 광주사무소 앞에서 ‘인권위제자리찾기 광주공동행동’ 주관으로 열린 집회에 편지를 보냈다. “저 선철규라는 한 사람으로서는 이 상을 받고 싶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인권활동가 동료들이 싸우고 있는데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선씨와 장애인 소리 영상팀은 이날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며 수상 거부를 선언했다. 선씨는 이제 ‘인권활동가’로 다시 태어났다.
광주/글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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