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품송이 600살을 넘기면서 기력을 잃은데다 겨울철 폭설·강풍 등으로 가지를 잃어 직각 삼각형 형태의 초라한 모습으로 변했다(왼쪽). 오른쪽은 1990년대 초까지 정삼각형 형태의 우아한 자태를 뽐내던 정이품송 모습. 충북 보은군청 제공.
강풍·폭설에 가지 쉽게 잃어
“소나무옆 불침번 서야할판”
“소나무옆 불침번 서야할판”
충북 보은군은 겨울만 되면 하늘을 쳐다본다.
보은군 내속리면 속리산 어귀에 있는 ‘지체 높은 나무’ 정이품송(천연기념물 103호) 때문이다. 조선 세조 때 늘어뜨린 가지를 스스로 들어올려 왕의 행차를 도왔다는 전설 덕분에 정2품 벼슬을 얻은 소나무는 600여년 동안 보은의 상징이요 명물이었다. 그러나 겨울철만 되면 바람과 폭설에 가지를 잃는 등 수난을 당하는 통에 군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 6일 밤 강한 바람(최대 순간 풍속 초속 14m)에 길이 4.5m, 둘레 20㎝가 넘는 가지 하나가 또 꺾였다. 1993년 2월 늦겨울 돌풍에 지름 26㎝나 되는 맨 아랫가지가 부러진 데 이어 98년, 99년, 2001년 겨울에 가지 1~2개씩을 잃었다. 2004년 3월 난데없는 폭설에 왼쪽 상부의 가지 3개가 동시에 잘려나갔으며, 2007년 3월에는 2007년 지름 30㎝, 길이 4~5m짜리 가지를 잃기도 했다.
정이품송은 좌우대칭, 정삼각형 형태의 우아한 자태를 자랑했지만 거듭된 수난으로 지금은 왼쪽 부분이 떨어져 나간 직각삼각형 형태의 초라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보은군과 문화재청은 지난해부터 2억3천여만원을 들여 바람·눈 등으로 부러지거나 상처난 가지 25군데를 치료하고 말라 죽은 가지 20개를 잘라낸 뒤 상처를 치료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지만 화려한 옛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정이품송뿐 아니라 보은지역 명품 소나무들이 잇따라 수난을 겪고 있다. 1962년 정이품송과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던 보은읍 어암리 ‘보은 백송’(104호)은 뿌리가 썩으면서 말라 죽어 2005년 천연기념물 지정이 해제됐으며, 보은군 보호수 76호로 지정됐던 황금소나무도 고사해 최근 흔적조차 사라졌다.
정이품송과 백송, 황금소나무, ‘정부인 소나무’로 알려진 서원리 소나무(천연기념물 352호) 등을 묶어 ‘소나무 고장’ 명성을 쌓고 자랑해온 보은군은 명물들의 잇단 수난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정유훈 보은군 문화재 담당은 “겨울철에는 정이품송 곁에서 불침번이라도 서야 할 만큼 긴장이 된다”며 “올겨울을 잘 지낸 뒤 내년 봄에도 꼿꼿한 기력을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청주/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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