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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북녘 내 고향이라우” 올 설에도 ‘그림속으로 귀향’

등록 2011-02-01 20:09수정 2011-02-01 20:59

북쪽이 고향인 유연택씨가 지난 31일 오후 경기 하남시 덕풍동 집에 걸려 있는 황해도 고향마을 그림을 보며 당시 이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남/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북쪽이 고향인 유연택씨가 지난 31일 오후 경기 하남시 덕풍동 집에 걸려 있는 황해도 고향마을 그림을 보며 당시 이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남/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황해도 연백출신 유연택씨 그림으로 그린 ‘망향도’
집집마다 번호표 매기고
누가 살았는지 상세히 분류
“명절 온마을 세배했는데…”
“이게 마을 지켜주던 당산나무이고, 여기는 딸부잣집, 또 이쪽은 요즘 마을회관 격인 공회당이야….”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훤히 내려다보이는 황해도 연백군 송봉면 청송리가 고향인 ‘실향민’ 유연택(78·경기 하남시 덕풍동)씨는 지난달 31일, 꼭 60년 전 떠나온 고향 마을을 그린 그림 곳곳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침이 마르도록 설명을 이어갔다.

유씨는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고향 땅이지만, 설과 추석 같은 명절은 물론 여러 조상을 모시는 시제 때가 되면 ‘그림 속 귀향’을 한다. 북에 두고 온 부모와 여동생, 고향 마을을 그리는 사무치는 마음에, 고향 땅을 상세하게 그려 넣은 <망향도>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집은 여기 42번 초가집이고, 열살쯤 되던 때 61번 여기 아래쪽 집으로 이사했지. 지금도 눈만 감으면 너른 들을 지나 소나무가 빽빽한 마을 뒷산의 아늑한 품에 파묻히곤 해요.”

유씨는 1951년 한국전쟁 1·4 후퇴 때 혈혈단신으로 월남했다. 미군부대 노동자로, 보일러 기술자로 일하며 아내를 만나 두 아들을 두고 손주도 얻었다. 하지만 명절 때만 되면 허전함을 달랠 길이 없었다. 2001년 회사를 퇴직한 직후 아련한 기억을 더듬어 한 달가량 매달린 끝에 떠나온 고향 마을을 화폭에 담았고, 10년째 이 그림을 보며 망향가를 부르고 있다.

가로 110㎝, 세로 85㎝ 크기의 종이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려 완성한 그의 그림은 마치 항공사진을 놓고 그린 듯 정밀하다. 옹기종기 모여 살던 81가구의 위치는 물론, 기와집과 초가집을 구분하고 소나무로 둘러싸인 정겨운 모습을 담았다. 달구지가 덜그렁거리던 마을 길, 일제 강점기 때 새로 뚫린 이른바 ‘신작로’. 마을 어귀에 버티고 서 있던 커다란 아름드리 도토리나무와 선산 앞의 제각. 이를 지키던 김씨네 집도 빼놓지 않았다.

그림에 등장하는 가옥과 건물엔 모두 번호를 매겼는데, 어느 집에 누가 살았는지를 그림 아래쪽에 따로 번호표로 분류해놓아 애절한 그리움을 더한 듯했다. 1번은 이 집성촌의 종가이다.

“백천 유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어서 설날엔 마을 모든 집을 오가며 세배를 드렸던 터라 누구네 집이 어디에 있고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를 정확히 기억할 수 있지요.”


주변에서 ‘이 그림을 널리 알려보라’는 권유도 받았지만 ‘혹여 두고 온 고향의 부모님과 여동생이 해를 당하지 않을까, 괜스레 북한 지형을 상세히 알거나 그렸다는 이유로 오해를 받지 않을까’ 싶어 불쑥 그림을 내놓지 못했다고 했다.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 유씨는 “급히 송아지 한 마리를 팔아 만든 돈을 건네신 아버지가 ‘한두 달만 버티다 오라’고 하신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틀린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며 멀끄미 그림만 들여다봤다.

하남/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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