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진안군 동향면 학선리 ‘행복한 노인학교’의 은빛기자단 할머니들이 좋은 기사 작성을 다짐하고 있다. 뒷줄 맨 오른쪽이 한글강사 오금숙씨. 진안군 제공
농한기에 폐교 이용 한글배워
버스배차 등 기고해 문제해결
원고료·상금 장학재단 기부도
버스배차 등 기고해 문제해결
원고료·상금 장학재단 기부도
진안 행복한 노인학교 ‘은빛기자단’
“늦게 한글을 깨쳤지만, 특종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갑니다.”
산골 할머니들이 은빛기자단을 꾸려 3년째 지역신문에 기사를 쓰고 있다. 주인공은 전북 진안군 동향면 학선리의 ‘행복한 노인학교’ 한글반 할머니 10명이다. 이들의 나이는 54살부터 81살까지 다양하다.
이 노인학교는 폐교된 분교를 이용해 2008년부터 시작했다. 겨울철 3개월과 여름장마철 2개월 등 농한기에 계절학기를 운영한다. 이 노인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들이 은빛기자단을 꾸린 것은 2009년 봄, 진안의 한 지역신문에서 글을 써 보라고 제의해 온 게 계기였다.
한글을 가르치는 평생학습지도자 오금숙(49)씨는 “신문사에서 제의가 왔을 때 처음엔 망설였는데, 한 글자라도 더 배우려는 할머니들의 열의를 보고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1인3역을 하고 있다. 농사꾼으로, 한글반 학생으로, 지역신문 기자로 활동하는 것이다. 최연장자 최병임(81) 할머니는 “이름 석 자 쓰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기사까지 쓰려니 힘들다”며 “아직도 발표할 때마다 떨린다”고 말했다.
그동안에 성과가 많았다. 지난해 진안군 평생학습축제 백일장대회에서 할머니 2명이 금상과 은상을 받았다. 은상을 받은 김종희(79) 할머니는 “화장실이 없어 불편하다는 글이 나가기 무섭게 노인학교에 예쁜 수세식 화장실이 생겼다”고 기뻐했다. 성영경(71) 할머니는 “자신이 살고 있는 학선리 마을의 버스 배차간격이 길어 불편하다고 썼더니, 배차간격이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지난해 7월에는 진안군 마을축제 기간에 운영하는 미니에프엠(FM)에 모두 출연해 ‘삶과 배움’에 관한 이야기를 2시간 동안 풀어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 진안군이 주최한 뿌리문학상에 10명 전원이 응모해 모두 특별상을 받았다.
할머니들은 받기만 하지 않았다. 올해 1월에는 은빛기자단 활동으로 받은 원고료를 십시일반 모아 진안군장학재단에 50만원, 행복한 노인학교에 10만원을 후원했다. 할머니들로서는 굉장한 돈이다.
한글강사 오씨는 “대부분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한글을 깨쳐도 영어가 들어 있는 휴대전화 세금고지서 따위를 보려면 아직도 도움을 받아야 한다”며 “그래서 ‘한글반’을 ‘문화해독반’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오씨는 “노인학교 등의 시설이 거리가 먼 읍내보다 가까운 마을로 들어와야 제대로 이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