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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루 사라진 ‘잿빛 뉴타운’

등록 2011-04-04 20:05수정 2011-04-04 23:03

 개발이익에 대한 기대감으로 곳곳에서 시작된 뉴타운 사업이 깊은 수렁에 빠졌다. 4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 뉴타운 사업지구 안 골목길 담벽에, 뉴타운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 모임인 ‘원미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붙인 ‘개발 반대 호소문’ 앞으로 한 주민이 무심한 듯 지나가고 있다. 부천/김태형 기자 <A href="mailto:xogud555@hani.co.kr">xogud555@hani.co.kr</A>
개발이익에 대한 기대감으로 곳곳에서 시작된 뉴타운 사업이 깊은 수렁에 빠졌다. 4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원미동 뉴타운 사업지구 안 골목길 담벽에, 뉴타운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 모임인 ‘원미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붙인 ‘개발 반대 호소문’ 앞으로 한 주민이 무심한 듯 지나가고 있다. 부천/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위기의 뉴타운' 집중 조명
소설 ‘원미동 사람들’ 무대 부천 부흥시장 주민들
정치인 장밋빛 공약에 뉴타운 동의했다가 ‘한숨’
보상비로 새아파트커녕 살던 집서 내쫓길 위기
사업인가 앞두고 곳곳 충돌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원미동 부흥시장에서 30여년 살아온 강현정(65)씨가 이곳 34평에 3층 벽돌집을 지은 것은 1988년이다. 1~2층 4가구한테서 받는 월세 100만원으로 풍족하진 않지만 남편과 여유로운 나날을 지내왔다. 그런 강씨가 요즘은 “날마다 뉴타운 반대 데모 하느라 팔도 아프고 가슴도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보상가로 새 아파트를 얻기는커녕, 갈 곳도 없고 월세 수입도 끊긴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며 가슴을 쳤다.

개발업자들이 던진 수억원의 ‘딱지’ 유혹과 정치인들이 떠들어댄 ‘장밋빛 공약’ 속에 시작된 뉴타운 사업이 불과 2년도 안 돼 침몰 위기에 놓였다.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주민들 사이엔 갈등과 분노, 불신만 커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2002년 은평·길음·왕십리 등 3곳을 시범지구로 지정하면서 시작된 ‘뉴타운 사업’(도시재정비 촉진사업)의 사업지구는 현재 전국 82곳에 면적으론 8000만㎡가 넘는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90배에 이른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일 때 서울 35개 지구 중 33개를 지정했고, 경기도에선 김문수 지사가 2006년 취임과 함께 동시다발로 추진하며 23개 지구가 지정돼, 서울·경기에만 58곳이 몰려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던 이 사업은 그러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정부가 2009년부터 수도권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해제하며 추진한 보금자리주택 사업이 충격을 더했다. 지금 뉴타운 사업은 곳곳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부천 부흥시장은 소설가 양귀자씨가 서민 삶의 애환을 그려낸 <원미동 사람들>의 실제 무대다. 이곳에 ‘뉴타운 광풍’이 덮치면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주민들의 눈가엔 핏발이 서 있었다. 과일가게·금은방 등 상점 70여개가 촘촘히 들어선 시장에서 남편과 가내의류업을 하는 심아무개(53)씨는 3일 “뉴타운 바람이 불면서 주민들끼리 싸우고, 반대하는 노인들은 밤새 잠도 못 잔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셋방 등 30여곳을 전전하다 1980년 건물을 사서 정착한 조세욱(57)씨는 “내 집 보상가를 따져보고 이사할 곳을 알아봤는데 막상 갈 곳이 없더라”며 허탈해했다.

부천시는 소사구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뒤 ‘뉴타운 공약’을 내걸어 거푸 경기지사에 뽑힌 김문수 지사의 정치적 고향이다. 그래서인지 경기도내 23개 뉴타운 지구 가운데 진도가 가장 빨랐다. 원미·소사·고강 3개 지구 49개 구역 615만㎡에 7만5803가구 19만여명이 이주 대상이다. 진도가 빠른 만큼 절망도 크다.

경기도 뉴타운 사업 1호인 ‘소사 본9-2D 구역’은 지주가 1명이어서 그만큼 사업도 빨랐다. 지난해 2월 착공 뒤 아파트 분양에 들어갔다. 하지만 1년째 계속 ‘분양중’이다. 본보기집(모델하우스) 관계자는 “보통 한달 보름이면 분양 계약이 끝나는데, 계약금을 5% 낮췄는데도 미분양이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소사동 뉴타운 조합은 시공사 선정이 무산됐다. 사업성 위험으로 시공사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은 탓이다. “제가 뉴타운을 처음에 하자고 했다”는 김문수 지사는 지난달 11일 국회의원과 경기도 기초단체장들에게 “앞을 내다보지 못한 점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도 뉴타운 사업은 계속 굴러갈 수밖에 없다. 부천은 49개 구역 가운데 31곳이 조합을 꾸려 시행 단계에 이미 들어섰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뒤늦게 반대해도 사업시행 인가를 앞둔 상태여서 “퇴로가 없다”는 게 김만수 부천시장의 말이다.


뉴타운 사업은 조합 설립 뒤 사업시행 인가까지 마친 뒤에야 사업 이전의 집값 평가액과 이후 분양가를 확정하도록 돼 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이주·철거까지 일사천리로 추진된다. 강씨처럼 나중에야 현실을 깨닫게 된 주민 반발이 격해져도 대책은 없다. ‘부천 뉴타운 재개발 비상대책위원회 연합’ 대표인 박덕기(52) 목사는 “사전에 내 집값도, 뉴타운 아파트 값도 모른 채 ‘돈 된다’는 환상에 넘어가 동의했다가, 뒤늦게 ‘알거지’가 되는 걸 알게 된 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라고 말했다.

구역별로 반대 대책위원회가 속속 꾸려지고, 주민들은 반대운동을 벌이다 졸지에 전과자가 되기도 한다. 지난달 부천시장실 점거농성으로 구속된 박 목사는 10여년 동안 노숙인 100여명에게 무료급식을 해온 ‘밥퍼 목사’로 이 지역에 알려져 있다.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주민은 부천·의정부에서만 50명을 넘어섰다.

원미동 사람들이 사는 원미7B구역도 조합 설립이 끝났다. 반대 주민들은 동의서 75장이 거짓 작성됐다며 제기한 조합설립 취소 소송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다. 뉴타운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꾸린 ‘원미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상영(70)씨는 “평생 살려고 직접 집을 지었는데, 그 꿈이 깨지려 한다. 나라에서 그런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그 꿈이 온전히 유지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부천/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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