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공부방 ‘무지개빛 청개구리’ 졸업생들이 자원봉사자가 돼 다시 공부방으로 돌아가 후배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왼쪽부터 졸업생 오상신(19), 오승관(23), 배성국(19), 박성욱(19), 박형관(19)씨.
서울 송파구 제공
비닐하우스촌 공부방 출신들
대학생 돼 ‘후배 도우미’ 나서
“꿈을 키웠던 곳, 돕는 건 당연”
대학생 돼 ‘후배 도우미’ 나서
“꿈을 키웠던 곳, 돕는 건 당연”
박성욱(19)씨가 가족들과 서울 송파구 장지동 ‘개미마을’로 이사온 것은 초등학교 2학년이던 2000년 가을 어느날 밤이었다. 사방이 어둠에 젖어든 틈을 타 한밤중에 조심스레 이사를 왔다. 개미마을은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이어서 단속 공무원들의 눈길을 피해야만 했다. 다음날 눈을 떠보니, 마을에는 새까맣고 조그만 비닐하우스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었고, 주변으로는 밭이 펼쳐져 있었다. 마을 앞으로는 거대한 올림픽훼미리 아파트가 마을을 집어삼킬 듯 서 있었다.
부모님은 일하느라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았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돌봐줄 어른이 없었다. 대신 마을 모퉁이에 있는 ‘송파꿈나무학교’라는 공부방에서 지냈다. 동갑내기 친구들, 형, 누나들이 많았다. 10년지기 친구들인 박형관·오상신·배성국씨를 이곳에서 만났다. 함께 공부하고, 악기를 연습하며 꿈을 키웠다.
“낡은 기타 하나씩만 가지고도 즐거웠어요. 베이스 기타는 클래식 기타 두 줄을 끊어 마련했고, 폐타이어를 가져와 드럼 연습을 했죠.” 넉넉하진 않았지만 행복했다.
공부방은 초등학생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공부방을 찾으면서 중고생들을 위한 청소년부 공부방이 만들어졌다. ‘무지개빛 청개구리’(무청)가 그것이다. 이름은 아이들이 지었다. 청개구리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저마다의 색깔을 가진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빛을 내기를 바라는 소망에서였다.
2005년 개미마을 일대에 법조단지가 조성된다는 계획이 나오면서 공부방이 사라질 위기도 있었지만, 에스케이(SK)그룹과 부스러기사랑나눔회의 후원으로 무청은 문정동 주택단지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양말공장을 리모델링했다. 공사에는 아이들 모두가 참여해 힘을 보탰고, 실내를 꾸미는 데도 아이들 의견이 반영됐다.
박성욱씨와 친구들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됐다. 무청을 떠나야 하지만, 이들은 다시 이곳을 찾는다. 학생이 아닌 자원봉사자로서다. 후배들에게 영어·수학 등을 가르치고, 동아리 활동도 이끈다. 디자인학과에 진학한 박씨는 만화 동아리, 배성국씨는 밴드 동아리, 박형관·오상신씨는 각각 댄스·통기타·영화 동아리 등에서 후배들과 호흡한다. 4년 전 대학에 진학한 무청 1기 졸업생인 오승관(23)씨는 몇년째 후배들에게 드럼 강습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들은 “무청에서 자랐으니 다시 이곳에서 후배들을 돕는 것은 자연스럽다”며 “이곳을 거쳐간 선배, 동기, 후배들은 주변의 도움과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받은 사랑을 어려운 이웃에게 돌려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무청은 아이들의 삶과 배움이 어우러지는 터전이다. 이곳 아이들은 삶 속에서 배우고 나누고 있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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