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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천장서 물 새도 안고쳐주고 방빼라 통보만…”

등록 2011-05-09 20:07수정 2011-05-09 22:33

‘계약만료 되면 집 비워라’ 내용증명 쏟아져
주거이전비 집주인이 주게 바뀌며 인심 ‘흉흉’
“1400만원 보증금 빼들고 어디로 가야 하나”
한때 ‘황금알을 낳는다’던 뉴타운 사업이 토지 등 소유자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한 가운데, 서울·경기지역 뉴타운 지구 주민 67%에 이르는 세입자들이 하나둘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고 있다.

집수리는커녕 “방 빼!” “물이 새는 게 아니라 쏟아졌어요. 주인은 못 고치니 나가라고만 하고….”

지난달 29일 찾은 서울 용산구 보광동 한남뉴타운 4구역 안 4층 주택의 반지하층에 사는 임명순(65·여·가명)씨의 집 문을 열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풍겼다. 10평 남짓한 방에는 누런 구정물이 담긴 크고 작은 대야 대여섯개가 놓여 있었다. 시커먼 곰팡이가 뒤덮은 천장에는 물방울이 촘촘히 맺혀 있었다.

10년 만에 가장 추웠다는 지난 1월 천장에서 물이 흘러내린 뒤 임씨의 70대 남편은 습기 때문에 기침으로 매일 밤잠을 설친다. “누전될까봐 형광등을 못 켠 지 벌써 넉달째”라는 임씨. 보증금 1400만원에 월세 11만원을 내는 그의 임대차 계약 기간은 아직 3개월이 남았지만, 집주인은 ‘언제 개발될지 모르는데 무슨 수리냐’며 “방을 빼달라”는 내용증명만 두 차례 보내왔다.

계약 갱신 요구는 나 몰라라 지난해 말부터 이곳 한남뉴타운 4구역 세입자들에겐 ‘내용증명’이 쏟아지고 있다. 따로 사유 설명은 없이 ‘계약 만료와 동시에 집을 비우라’는 통보다. 내용증명을 세 차례 받은 김미경(50·가명)씨는 “전세금을 올려달라면 협의라도 해보겠는데, 나가라는 말뿐…”이라며 한숨지었다.

이곳에 뉴타운 사업이 시작된 2006년, 집주인들은 “더 살다 임대아파트 입주권이라도 챙겨 나가라”고 세입자들에게 권했다. 하지만 2009년 용산참사 뒤 세입자 주거이전비를 집주인이 부담하게 되면서 동네 인심은 흉흉해졌다. 세입자들이 떠난 한남동 일대에는 지금 100여가구가 빈집이라고 부동산업자는 전했다.

집주인들도 답답해한다. “세입자 5가구를 내보냈다”는 보광동의 한 다가구주택 주인(50)은 “10년을 같이 살았는데,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내 심정은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의 계산은 간단하다. 세입자 주거이전비는 4인 가구 기준으로 1400만원이다. 월세로 50만원 받아도 1년에 600만원, 2년에 1200만원으로 주거이전비에도 모자란다. 그는 “5가구에게 주거이전비를 주면 5000만원이 넘는데, 이걸 감당할 주인이 어디 있겠느냐”고 항변했다.

“서울에선 갈 곳 없어…어디로? 한남뉴타운 사업계획 공람 공고일인 2009년 4월 기준으로 임명순씨에게는 임대아파트 입주권과 주거이전비 900만원을 받을 권리가 생겼다. 그러나 건물 철거 단계인 관리처분 이전에 이주하면 입주권도, 주거이전비도 받기가 어렵게 된다.


주변 전셋값은 그사이 1000만원씩 치솟고, 10여평짜리 다가구주택 월세도 50만~70만원 수준이다.

그나마 집 근처로는 이사하기도 어렵다. 같은 구역에서 이주한 세입자에게는 새 집주인이 주거이전비를 보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남뉴타운 4구역에서 집을 알아본 임씨는 “4구역 사람은 안 받는다”는 말에 발길을 돌렸다고 했다. 그는 “이제 서울에서 이 돈 가지고 어디 가겠느냐”며 눈물을 글썽였다. 임씨는 영구임대아파트 입주자 선정에서도 탈락했다.

그런데도 세입자들이 하소연할 곳은 없다. 지방자치단체가 벌이는 주거환경 개선사업 때만 세입자들의 동의를 구할 뿐, 뉴타운 사업을 추진할 때는 세입자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송영주 경기도의원(민주노동당)은 “뉴타운 사업에서 세입자는 주민이 아닌 신세”라며 “세입자도 사업 추진 때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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