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다
잠깐독서
삶이 내지른 ‘관계’의 덫에 빠진 여자들
엄마, 없다
“종이에 손끝이 베일 때의 미세한 통증은 당사자만 느낄 수 있다. 크기가 다를 뿐, 고통이 아니라곤 할 수 없다. 집단에는 늘 각 개인의 드러난 고통과 숨기고 있는 고통이 공존한다.” 미세하고 다르며 드러나고 숨겨져 있는 것, 그리고 고통. 열한가지이되 서로 잇닿아 있는 이야기들을 간추리면 이렇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는 지은이가 쓴 첫 소설 <엄마, 없다>는 고개를 쏙 내밀며 “영구, 없다!”를 외치는 희극인처럼, 있는 고통을 없는 듯 감추거나, 보이는 고통을 보이지 않는 듯 외면하는 현대인에게 속삭이는 소설적 은유다.
그러한 문제의 날카로운 예각을 지은이는 여러 여성들에게서 찾았다. 지은이가 본 그들은 자신의 삶이 내지른 관계의 예각에 찔려 아파하는 이들로, 한결같이 “좋아서 울고 미워서 운다.” 핀셋으로 머리카락을 집듯 지은이는 그들을 섬세하게 응시한다. 가령 이렇다. “상처는 어머니가 의식을 잃었던 1시간 동안 의식을 돌려놓으려고 몸이 내지른 아우성 같았다”거나 “둥글고 뭉툭한 아줌마의 코는 어쩐지 슬픔을 감지하는 센서 같았습니다”라고. 양부모가 다른 아이를 입양하면서 ‘잃어버림’을 슬퍼하는 입양아, 청소일 하는 할머니가 부당해고에 맞서 싸우는 학교에 다니는 손녀, 이혼한 남편의 어머니와 목욕탕에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며느리…. 그들은 물 위에 뜬 기름의 슬픔처럼, 만났으되 만나지 못하는 ‘관계들’의 슬픔을 전한다. 그리고 지은이는 그들과 자신, 우리들의 처지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모두 제 이야기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김민아 지음/끌레마·1만2000원.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노동지옥’ 탈바꿈시킨 아름다운 경영
키친아트 이야기 슘페터가 말한 ‘기업가의 혁신’은 어디에서 오는가. <한겨레> 경제부 정혁준 기자가 쓴 <키친아트 이야기>는 그것이 단지 똑똑한 몇사람의 최고경영자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하게 주장한다.
키친아트는 한국 주부들에게 ‘주방 속의 예술감각’이라는 슬로건으로 매우 친숙한 주방용품 회사다. 회사 안을 들여다보면 직장인이면 누구나 소망하는 멋진 일터이기도 하다. ‘공동 소유, 공동분배, 공동책임’을 사훈으로 내건 키친아트의 직원은 20여명에 불과하지만, 매출은 연 700억원에 이른다. 직접 제품을 만드는 공장은 단 한곳도 갖고 있지 않지만, 4000여종의 제품을 만든다. 직원 모두가 최고경영자라고 생각하고, 유명 백화점에 당당히 입점하고 있는 유일한 국내 브랜드다.
하지만 이 기업의 전신인 경동산업은 노동환경이 열악하기로 이름 높았던 곳이었다. 인천에 있던 경동산업은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대학생 시절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위장취업을 했던 곳이고, 기계에 손이 잘린 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박노해의 시 <손무덤>의 배경이 됐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 회사가 2000년 4월 부도가 난 뒤 변화가 시작됐다. 전직 노조위원장과 전직 구사대원들이 회사를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손을 잡은 것이다. <키친아트 이야기>는 서로 대립했던 이들의 “회사를 되살리고자 하는 꿈과 열정”이 바로 슘페터가 강조한 ‘혁신’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기업과 직원 간의 갈등이 첨예한 문제가 되고 있는 요즘 키친아트 사례가 ‘경영 속의 예술감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청림출판·1만3천원.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키친아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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