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군사독재 맞서 온몸 던진 고난과 사랑의 삶 그리며
고 최성묵 목사 등 6명 기려…24일 저녁 중부교회서
고 최성묵 목사 등 6명 기려…24일 저녁 중부교회서
‘나그네처럼 살아야 한다. 탁 터져서 장비 없이 빈손으로. 많이 모은 소유는 오직 우리 발꿈치에 무거운 것. 원하거든 쓰러지도록 소유하라. 우리는 버리고 가리라. …’
1987년 5월 전두환 군사정권의 장기집권을 막기 위해 출범한 ‘호헌반대 민주헌법쟁취 범국민운동 부산본부’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6월항쟁을 주도한 최성묵 목사가 남긴 시의 일부다. 1930년 경북 영일군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 8월 인민군한테 체포돼 총살형을 당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이듬해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했다. 1959년 한국신학대학에 이어 1968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1977년 부산 중구 보수동 중부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그는 1979년 부마항쟁에 연루돼 경찰에 연행된 것을 시작으로 1992년 3월22일 과로로 쓰러져 숨질 때까지 부산을 떠나지 않고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그가 15년 동안 이끌었던 중부교회는 이른바 수배로 도피하던 운동권의 피난처였으며, 암울한 시국을 성토하는 토론장이었다.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삶을 부산에서 한평생 실천하다가 유명을 달리한 6명의 뜻을 이어받으려는 기독인들이 24일 저녁 6시30분 중부교회에 모인다. 부산에서 1970~1980년대에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와 통일 및 인권 신장에 앞장서다 옥고의 후유증 등으로 세상을 떠난 진보적 기독교 인사들을 함께 추모하는 연합예배가 처음으로 열린다.
반유신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1980년 7월 국군보안사령부 부산분실에 참고인으로 불려간 뒤 엿새 만에 부산통합병원에서 58살의 나이로 숨져 광주 5·18 묘지에 안장된 임기윤 목사, 국가보안법 철폐 국민운동본부 부산본부 공동대표 등을 맡으며 민주화투쟁과 북녘돕기운동을 벌이다 2002년 50살의 나이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김영수 전 우리·믿음교회 목사,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 집행위원과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장 등을 지내고 2007년 80살에 작고한 한빛교회 조창섭 목사, 김나야·전두언 집사를 추모한다.
이날 합동 추모예배를 여는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장 박철(56) 좋은나무교회 목사는 “먼저 가신 신앙 선배들이 역동적인 역사의 한가운데서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실천하면서 보여주었던 고난과 사랑의 삶을 후배 기독인들이 계승하고자 합동추모예배를 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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