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기지 추진 어떻게 돼왔나
군·정부, 주민불신 자초
반대운동 전국적 확산
군·정부, 주민불신 자초
반대운동 전국적 확산
제주해군기지 건설 문제가 지역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부른 것은 정부와 해군의 갈짓자 행보와 밀어붙이기식 사업 추진이 원인이 됐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논의가 시작된 것은 해군이 정부의 화순항 개발계획에 해군부두 건설을 포함시켜달라고 요청한 지난 1992년이다. 해군은 2002년 5월 제주도를 기지로 한 전략기동함대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뒤 해군부두, 전략기지, 제주해군기지 등 수시로 이름을 바꿔가며 사업을 추진해왔다.
주먹구구식 후보지 선정도 주민 불신을 자초했다. 화순항 주변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자 해군은 2005년에는 위미항으로 후보지 변경을 검토했다. 2007년 3월에는 김성찬 현 해군참모총장이 지역방송에 나와 위미항을 최적지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4월 최종 후보지로 강정항이 결정됐다.
정부와 해군이 받았다고 강조해온 ‘주민동의’는 2007년 4월 마을총회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이 총회에는 당시 주민 87명만이 참석했다. 동의 사실을 뒤늦게 안 주민들이 같은해 8월20일 연 마을총회에서는 주민 725명 가운데 680명이 기지 유치에 반대했다. 앞선 ‘주민동의’가 진정한 주민의 뜻이 아니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제주도는 정부의 국가안보와 국책사업이라는 논리 앞에서 무력했다. 그러면서도 강정마을 일부 주민들이 유치 결정을 내린 뒤 20일 만에 여론조사를 통해 강정마을을 후보지로 선정하는 순발력을 보였다.
2009년 4월 제주도는 국방부, 국토해양부와 기지 건설을 위한 기본협약서를 체결했다. 이에 주민과 시민사회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당시 김태환 지사가 주민소환 투표의 주인공이 되는 수모를 겪었다. 우근민 현 지사도 지난달 1일 “해군기지 공사 중단은 냉정하게 말하면 물건너 갔다”고 말해 주민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해군기지 반대운동은 지난 3월부터 생명평화결사 등 전국의 시민사회단체와 문화예술인, 인권운동가, 해외의 진보적 지식인들까지 동참하면서 전국적·국제적 문제로 발전했다.
반대운동이 격렬해지면서 주민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 3명의 구속자가 나왔고, 반대 주민들을 상대로 한 해군과 공사업체의 고소·고발과 손해배상청구 등도 이어지고 있다.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 제주도의회 문대림 의장 등 도의원들이 거듭 공사 중단을 요청하고 있으나, 정부와 해군은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는 상태다.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제주/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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