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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녹색마을이 뭐기에 …한 마을 이장의 죽음

등록 2011-10-03 14:24

조성사업 대상자 선정 이후 마을 주민들 찬·반으로 갈려 갈등
정부와 공주시 ‘밀어붙이기식’ 사업 추진에 분통
지난달 30일, 충남 공주시 계룡면 금대리에서 만난 임영란(52)씨는 밤을 줍고 있었다. 깡마른 체구에 눈빛은 희미했고, 간혹 그 두눈에 눈물이 고였다. 거동이 불편한 늙은 시아버지는 먼 발치에 앉아, 그 모습을 힘없이 바라만 봤다. 임씨는 지난달 15일 남편을 잃었다. 제초제를 마신 뒤 하루를 버티지 못했다. 타들어가는 목소리로 남편이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미안하다”였다. 유서는 없었다. 밤나무는 그가 생전에 “노후에 용돈벌이라도 하자”며 심어놓은 것이었다. 그 밤이 조금씩 열매를 맺을 무렵, 남편은 그렇게 떠났다.

남편인 정필국(56)씨는 이 마을 이장이었다. 5년전 이 마을 이장으로 뽑혔다. 이장 임기는 2년이었지만, 삼선을 할 만큼 주민들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러나 지난 5월 금대리가 정부의 녹색마을 조성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모든 것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오순도순 정답게 지내던 주민들이 사업을 둘러싸고 찬·반으로 갈려 갈등을 빚게 됐고,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해온 이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사업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정부 투자가 이뤄지면 낙후된 마을이 좀 더 나아질 수 있고, 녹색마을의 핵심 시설인 바이오가스 플랜트를 통해 자체적으로 전기와 열을 생산해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 사업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가축분뇨와 음식물쓰레기로 생산하는 전기와 열 에너지는 일부에 불과하고, 시설에서 발생하는 악취로 주민들이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맞섰다.

사업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금대리 뿐만 아니라 이웃한 인근 6개 동네에서도 이어졌다. 일부 주민들은 ‘분뇨처리시설 유치 결사 반대’ 등의 내용을 담은 펼침막을 내걸었고, 공주시청 등에 사업 철회 민원 등을 내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악취가 퍼질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특히, 이들 6개 동네에서는 ‘6개리(녹색마을 조성)반대추진위원회’가 결성되기도 했다.

사업이 진행되면서 이를 둘러싸고 주민들끼리 얼굴을 붉히는 일도 잦아졌다. 인근 마을 이장들이 정씨를 찾아와 사업을 만류하기도 했다. 주민들 얘기를 들어보면, 사실 금대리 주민 대다수는 이 사업에 대한 거부반응이 크지 않았다고 한다. 바이오가스 플랜트가 이미 이 마을 남쪽에 조성돼 있는 가축분뇨처리시설 인근에 들어설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주시가 이 일대 토지매입에 실패하면서 플랜트 조성 예정지가 마을 북쪽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민 동의가 부족한 가운데 사업이 급히 진행되면서 이 마을 43가구 가운데 35가구가 반대로 돌아섰다.


특히 장기정씨 종약회에서 공개적으로 사업을 반대하고 나섰다. 금대리는 장기정씨 집성촌이다. 이장 역시 장기정씨였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주민은 “의지했던 문중에서조차 사업을 반대하면서 이장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인 임씨는 “남편이 주민들이 갈등을 벌이는 모습에 심적 압박을 많이 받아, 죽기 20일전부터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정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렇게 자신을 짓눌러온 이장이라는 멍에를 벗었다.

금대리 주민들은 찬·반을 떠나 정부와 공주시의 ‘밀어붙이기식’의 사업 추진에 분통을 터트렸다. (녹색마을 조성사업) 반대추진위원장인 주민 양인철(56)씨는 “주민들 사이에 충분한 토론과 합의가 이뤄지기도 전에 행정안전부와 시가 이곳에서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면서 주민갈등만 키웠다”고 말했다. 찬성추진위원장인 정태성(59)씨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하는 녹색마을 사업의 취지와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면서도 “단기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충분한 설명과 장기적인 계획 없이 관주도로 무리하게 사업을 진행하면서 결과적으로 이런일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부가 금대리에 앞서 사업을 추진했다가 주민 반대에 부딪혀 사업이 무산된 월암리의 경우, 행안부는 석달만에 전국을 대상으로 사업을 공모하고 월암리를 최종 대상지로 선정했다. 이런 전례에도 행안부는 또다시 두달만에 쫓기듯이 인근 금대리를 사업 대상지로 새롭게 결정했다. 정부가 녹색마을 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 윤데마을은 마을조성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이 가운데 5년여에 가까운 시간을 주민참여를 위해 투자했다.

이 때문에 정부 내에서조차 이번 사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직속 녹색성장위원회는 지난달 7일 열린 녹색성장 이행점검회의에서 “저탄소 녹색마을은 준비가 불충분하고 운영관리와 지자체 협조체계가 미흡하다”며 “2020년까지 녹색마을 600개 조성이라는 과다한 사업계획을 실현가능한 범위로 대폭 조정하고 추진체계를 구축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지난 8월 펴낸 ‘2010회계연도 결산 분석 종합’에서 “주민동의서 요구 등 사전 행정절차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미흡한 사업추진 앞에 남편을, 아버지를, 자식을 잃은 유족들은 비통해하고 있다. 임씨는 “남편이 마을이 깨끗해지고 좋아진다는 말을 믿고 나라에서 한다는 일에 앞장섰을 뿐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부는 올해안으로 공사에 들어갈 방침이고, 일부 주민들은 이달 초 이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 계획이다. 저무는 가을빛속에서 ‘녹색마을’은 누렇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공주/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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