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조합설립 무효 판결
“동의율 계산 방식에 문제”
“동의율 계산 방식에 문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성북구 정릉(사적 제208호) 근처에 고층 아파트 재건축을 추진하던 조합에 대해 법원이 조합 설립 무효 판결을 내려, 고층 아파트 재건축 사업에 제동이 걸렸다.
24일 정릉지역 재건축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모임인 ‘정릉을 사랑하는 모임’은, 지난 2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가 재건축 반대 주민들이 정릉 제6구역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을 상대로 낸 조합 설립 무효소송에서 조합설립인가 무효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재건축 주민 동의를 구할 때 연립주택과 아파트는 일반 단독주택과 달리 떼어서 동의율을 계산해야 하는데 묶어서 계산했다”며 “아파트 등을 떼어서 계산하면 정릉 제6구역 재건축 주민동의율이 법적 기준인 75%에 미달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재건축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재건축 조합 설립에 동의한 조합원들도 재건축과 관련해 문화재청의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하는지, 이로 인해 조합원 분담금이 3000만~4000만원에서 1억~1억2000만원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지 모른 채 동의했다”며 “조합이 이를 설명해주지 않았으므로 조합 설립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해왔다.
법원이 조합설립 무효 판결을 내림에 따라 정릉동 506-50번지(정릉 제6구역)에 고층 아파트를 지으려던 재건축 사업이 당분간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법원의 판결에 앞서 문화재청은 세차례(지난해 9월, 올 3·7월) “재건축이 정릉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며 ‘문화재 보호구역에 대한 현상변경 허가’를 부결하거나 반려한 바 있다. 최근 조합이 4번째 신청한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 신청에 대해 문화재청은 지난 12일 회의를 열어 조합 설립무효 소송이 진행중이므로 재판 결과를 보고 판단하자며 조합이 낸 설계구조 변경 심의를 보류했다.
지역 주민 김명숙씨는 “왜 멀쩡한 동네를 획일적인 콘크리트 아파트로 채우려고 하느냐”며 “정릉 코앞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정릉의 고유한 풍광과 가치가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주민들도 인공 건축물을 설치해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취소된 독일 드레스덴 엘베계곡의 사례를 들어, 정릉 일대에 고층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경우 정릉이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잃고 서울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재건축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7~15층 아파트 16개동 710가구가 살 단지를 짓기로 하고 2009년 10월 재건축조합 설립 인가를 받아 지난해 초 시공업체를 선정하는 등 재건축 절차를 밟아왔다. 애초 지난해 말 공사를 시작하려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의 반대로 재건축 작업이 멈춰 있다. 조합은 정릉에서 가까운 곳에는 저층 아파트를 짓는 등 설계 구조를 변경해 문화재청에 다시 심의를 신청하는 등 재건축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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