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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은 조서’로 거리서 ‘범인 만든’ 경찰

등록 2011-11-11 20:49수정 2011-11-11 22:00

다시서기 수원지원센터, 다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8일 수원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숙소녀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4년6개월째 복역중인 노숙인 정아무개씨의 형집행정지와 노숙소녀 사망 사건의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수원/홍용덕 기자 <A href="mailto:ydhong@hani.co.kr">ydhong@hani.co.kr</A>
다시서기 수원지원센터, 다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8일 수원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숙소녀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4년6개월째 복역중인 노숙인 정아무개씨의 형집행정지와 노숙소녀 사망 사건의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수원/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사회적 약자’ 범인 몰아 실적 키운 수사 파문
노숙인 야구방망이로 위협해 거짓 진술 받고…지적장애 소녀 영아살인자로…
수원 영아유기 치사·노숙소녀 살해 등 ‘거짓’ 들통
대항력 부족 악용해 ‘불법 수사’…사건 해결 홍보
경찰 “대법원 최종 판결뒤 재수사 여부 검토할 것”

“당시 태어난 아기가 아들인지 딸인지 알고 있나요?” “아들이었습니다.”

아기를 낳은 적도 없는 지적장애 2급인 10대 노숙소녀 조아무개(17)양이 경찰 조서에서는 아기를 낳아 내다버린 비정한 엄마로 둔갑해버렸다. 지능지수 45 이하에 정신연령은 4~8살 수준이고, 구구단을 채 5단도 외우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조양은 2007년 5월21일 밤 경기도 수원시 한 건물 화장실에서 남자아이를 낳은 뒤 버려서 숨지게 한 혐의로 수원남부경찰서 ㅇ형사에게 조사받고 그해 6월3일 구속됐다.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는 조양의 생생한 자백으로 가득 찼다. 이름 모를 남자와 만나 임신하고 아이를 낳게 된 경위, 노숙인 홍아무개씨의 도움을 받아 탯줄을 자르고 이어 검정 비닐봉투에 아이를 넣어 내버린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기술됐다. 홍씨도 범행을 자백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소설’이었다. 11일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유전자 감정 결과 ‘숨진 태아와 조양 사이엔 친자관계가 없다’고 밝혀 조양은 풀려났다.

조양의 ‘황당한 출산사건’이 발생하기 1주일 전인 5월14일 노숙소녀(15)가 수원의 한 고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사건 당일 정신과 치료 전력이 있는 정아무개(34)씨와 지적장애 2급인 강아무개(33)씨 등 노숙인 2명을 체포해 구속했다. 이 사건도 수원남부경찰서 ㅇ형사가 조사했다.

7개월쯤 지나 이번에는 수원지방검찰청이 노숙소녀 사망사건의 공범이라며 추가로 10대 노숙청소년 5명 가운데 4명(1명은 형사미성년자)을 구속해 언론에 발표했다.

노숙청소년들은 “범인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이들의 잘 짜인 조서 때문에 1심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에서야 검찰의 자백 회유, 짜깁기 수사, 범행을 부인하는 진술 제외하기 등을 보여주는 ‘영상녹화물’이 변호인 쪽 요청으로 증거로 제출됐다. 무죄가 선고됐고, 대법원도 지난해 7월 “이들 자백의 신빙성이 의심된다”며 무죄판결을 확정했다.


사건의 범인은 노숙인 두 명만 남은 셈이었다. 그러나 4년6개월째 복역중인 노숙인 정씨와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은 강씨도 노숙청소년들의 재판정에서 무죄를 호소했다. 검찰은 다시 이들을 위증 혐의로 기소했다. 수원지방법원은 두 사람의 위증 혐의에도 잇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범행 시각과 사망 추정 시각이 다르다”는 것이 이유였다. 노숙인 정씨는 “나는 죽이지 않았다. 죽인 것을 보지도 못했다”고 호소하며,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임신한 적이 없는 조양이 어떻게 아기를 낳아 내버린 범죄자로 구속될 수 있었을까? 노숙청소년 5명은 어떻게 범죄자로 갇혔고, 수감중인 정씨는 왜 경찰에서는 거짓진술을 했던 것일까?

조양의 어머니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해 4월 “장애소녀에게 보호자 등 신뢰관계자를 동석하도록 한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은 채 경찰이 허위자백을 유도했다”며 23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노숙인 홍씨도 재판에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형사들이 자꾸 쓰라면서 야구방망이를 놓고 위협해 겁이 나 허위진술했다”고 털어놨다.

노숙청소년 4명과 노숙인 정씨의 변호인인 박준영 변호사는 “가족 관계가 이미 끊긴 상태에서 장애인과 노숙인, 노숙청소년들은 수사기관에서 가족은 물론 단체의 도움도 전혀 못 받았다”며 “한 경찰관이 ‘피의자 신문조서는 경찰관의 생각이 깃든 에세이’일 뿐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사건을 수사한 수원지검 검사는 검찰을 나와 변호사로 활동중이고, 수원남부경찰서 ㅇ형사는 지금도 경찰에서 근무중이다.

“나도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노숙인 정씨를 풀어주라고, 다시서기 수원지원센터와 다산인권센터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8일 수원지방검찰청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진술 번복이 위증이 아니라는 무죄판결이 나온 만큼 형집행정지 조처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정씨의 석방을 요구하는 긴급구제 신청을 냈다.

노숙인, 장애인, 노숙청소년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겨냥한 검찰·경찰의 수사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는 “현행 형사소송법이 ‘피의자가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전달할 능력이 미약한 등의 경우 피의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자를 동석케 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도 허울에 그쳤음을 보여준다”며 “실질적 준수를 위한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나원오 경기지방경찰청 강력계장은 “노숙소녀 상해치사사건 수사에서 강압수사나 짜맞추기 등의 비합법적인 수사는 없었다”며 “정씨의 상해치사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와야 재수사 여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글·사진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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