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재단 “교과서 오류 상당수”… 21일 심포지엄 주제로
“교과서에 표기된 ‘동학농민운동’을 ‘동학농민혁명’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한국근현대사학회는 오는 21일 오후 1시 서울 언론회관에서 ‘역사교과서의 동학농민혁명 서술,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동학농민혁명 심포지엄을 연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중·고교 역사교과서의 집필 기준을 만든 상황에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한 역사교과서의 잘못을 살펴보기 위함이다.
발표자들의 자료를 보면, 교과서에 나타난 동학농민혁명 관련 내용 중에는 오류가 상당히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대표적인 오류는 모든 교과서가 ‘혁명’을 ‘운동’으로 표기한 부분이다. 박맹수 원광대 교수는 “1894년 대봉기는 폐정개혁안을 통해 부패한 집권자의 교체를 요구하고, 유무상자(부자와 가난한 자가 서로 도와야 한다는 공동체적 정신) 및 토지균분의 실천과 신분해체를 주장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려 했다는 점에서 혁명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특히 “동학농민혁명은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근현대사에서 주목할 만한 의미가 있고, 2004년 3월 공포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차원에서 혁명임을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역사교과서에 여전히 운동으로 표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양식 충북학연구소장은 교과서에 따라 혁명의 단계별 전개과정을 제대로 서술하지 않았고, 2차 동학농민혁명 기술에서도 혁명의 전국성·혁명성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동학의 남북접 대립구도를 지나치게 부각시킨 점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고쳐야 할 오류가 적지 않았다. 전봉준 압송 사진은 1894년 12월 순창에서 체포돼 압송되는 당시 모습이 아니라, 1895년 2월 서울 일본영사관에서 법무아문으로 이송되기 직전에 일본 사진사(무라카미 덴신)가 촬영했다. 김개남 장군이 참수형 당한 뒤의 사진도 진위가 부정확해 추정사진으로 설명을 고쳐야 한다.
정읍의 만석보(洑) 유지비 위치가 부안으로 잘못 나왔고(지학), 김개남은 무장기포에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전봉준·손화중과 함께한 것으로 기술됐다(삼화, 법문, 금성). 손병희를 교단 지도자로 서술하거나(금성), 최시형이 충주에 중앙기관으로 법소를 설치했다는(중앙) 부분도 사실이 아니라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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