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진공원지비’(德津公園之碑)
친일파 기부 내용 새겨져 2000년 이후 갖은 수난
“안내판이라도” 지적에 대학쪽 “역사적 보존가치”
“안내판이라도” 지적에 대학쪽 “역사적 보존가치”
해방 이전 전북대학교 교정에 세워진 기념비에 일제의 연호와 친일파 이름 등이 새겨진 것을 놓고 또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전북대 학생회관 근처에는 상·하층부와 중앙에 넓은 돌로 이뤄진 높이 3m가량의 ‘덕진공원지비’(德津公園之碑·사진)라는 기념비가 있다. 이 기념비에는 앞면에 덕진운동장 건설, 뒷면에 덕진공원 개요 등을 내용으로 한 비문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는 건축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소화 9년(1934년)과 친일파로 알려진 박기순이 3천원을 기부했다는 내용 등이 있다. 박기순은 한일합방 이후 전북 여산군수, 전주 농공은행장, 조선농회 도상임위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등을 지냈다.
비석은 일제 강점기 당시 덕진공원과 운동장 입구에 있었지만 1949년 전북대가 설립되면서 그 터가 학내로 편입됐다. 비석에는 “무릇 국민의 교양은 국운이 융성하고 번창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교양은 신체를 강건히 하고 정신을 수양하는 데 있다”는 내용과 박기순의 공적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친일 잔재 청산 바람이 거세지면서 비석이 수난을 겪었다. 2002년 10월, 한 인터넷 매체와 전북지역 일간지가 일제 잔재인 기념비를 이전하는 등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보도했다.
이어 2003년에 전북지역 한 단체가 받침돌에 시멘트를 발랐고, 이후 누군가가 빨간색 페인트칠을 했다. 현재 시멘트는 벗겨졌지만 페인트 흔적은 그대로 남아 있다.
2002년 전북대에 비석 철거를 요구했던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전북지부장 최재흔씨는 “처음에는 철거를 주장했지만, 역사적 교훈을 삼기 위해서라도 기념비 내력과 친일파 행적을 제대로 알리는 안내판이라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전북대에는 이 비석을 관리하는 전담부서가 없다.
재산을 기증한 박기순이 친일파는 맞지만, 비석 자체는 일제 착취와 관련이 없고 도시계획 등 역사적 의미가 크다는 목소리도 있다.
전북대 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비석을 넓은 의미의 유산이라고 전제할 때 친일파의 이름이 비문에 들어갔다거나 페인트가 뿌려진 것 자체도 역사의 산물”이라며 “연구자 입장에서 보면 이 비석은 기록적 측면에서 보존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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