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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이사람] “7살부터 88살까지 농촌의 영혼 담아”

등록 2011-12-23 19:38

김재형(47) 죽곡농민열린도서관장
김재형(47) 죽곡농민열린도서관장
주민참여 시집 ‘소, 너를 길러온지…’ 펴낸 김재형 도서관장
곡성 죽곡면 105명 시 모아
출판사도 놀란 ‘작품’ 선봬
“시는 세상 변화시킬 도구”
“왜 이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았는지/… 이제는 몹쓸 놈의 병을 얻어/… 저 산에 해 저물어가듯이 내 인생도 저물어가네.” 전남 곡성군 죽곡면 용정리 김봉순(88) 할머니가 쓴 시 ‘내 인생’의 일부다. 몸이 아파 하루 종일 방안에 앉아 호박 덩굴 자라는 모습과 텔레비전을 바라보며 사는 황혼의 뒤안길이 담긴 작품이다.

죽곡농민열린도서관이 최근 낸 시집 <소, 너를 길러온 지 몇해이던고>(강빛마을 냄)에는 7살 어린이부터 88살 할머니까지 주민 105명이 쓴 시 116편이 실려 있다. 죽곡면민의 5%가량이 참여한 셈이다. 시집 제목은 “너를 길러온 지 몇 해이던고/돌투성이 밭갈 때가 언제이던가/담벼락에 세워둔 쟁기는 언제 쓰려는가/세월이 가는 동안 녹이 슬고 말았네”라고 읊은 최태석(60)씨의 시 ‘소’ 첫 구절에서 땄다. 농촌에 살면서 느낀 마음을 맑고 투명한 언어로 표현된 시들이다.

김재형(47·사진) 죽곡농민열린도서관장은 지난해 12월 전남문화재단의 문화사업 공모에 농촌 주민들의 시집 발간을 신청했다. 부산 출신으로 2001년 생면부지인 죽곡으로 귀촌한 그는 2004년 8월 도서관 개관을 준비하면서 마을 시집 발간을 꿈꿔왔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세 가지 도구는 자전거(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이동거리와 정열), 도서관(인문학적 기반), 시(영혼)라고 생각합니다. 농촌에 순수한 영혼이 깃든 삶이 없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마을 시집을 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도서관 운영위원 20명 대부분이 처음엔 “촌 사람들이 웬 시집이냐”며 반대했다. 지난 5월 공모사업에 선정된 뒤에야 시집 발간 안건이 가까스로 운영위원회를 통과했다. 열린도서관은 ‘죽곡마을 시문학상’ 공모 사실을 알리는 홍보지 4000장을 제작해 마을 곳곳에 알렸고, 지난 7월엔 백무산 시인을 초청해 시 강좌를 열기도 했다. 사업비 100만원은 1만원짜리 지역 상품권(마을화폐)으로 바꿔 주민들에게 원고료로 줬다.

출판사 쪽은 처음엔 ‘동네에서 돌려보는 시집’쯤으로 여기다가 시들을 읽어본 뒤엔 “고 이오덕 선생님이 시골 아이들의 시를 모은 것과 비슷하다”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시집은 22일부터 온라인으로 판매되고 있다. 김 관장은 “시를 쓰고, 공부하고, 토론하는 문화에 거리감을 가졌던 동네 분들도 이번 시집 발간을 자기 일처럼 받아들인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광주/글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디지털농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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