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본사 유치 갈등…경주 양북면, 임명 거부
“시장과 의견 다르다고 민의 무시” 주민들 반대집회
“시장과 의견 다르다고 민의 무시” 주민들 반대집회
경북 경주시 양북면 어일1리와 봉길리 주민 200여명은 지난해 12월30일 오후 5시 양북면사무소로 찾아갔다. 주민들은 “주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뽑힌 이장을 왜 임명하지 않느냐”며 거세게 따지며 면사무소에서 밤샘농성을 벌였다.
어일1리 주민들은 이에 앞서 새 이장으로 하성희(42)씨를 뽑았다. 마을 주민 116명이 투표해 하씨가 77표, 배아무개씨가 25표, 최아무개씨가 14표를 받았다. 봉길리 주민 77명도 투표를 해 66표를 얻은 김석철(62)씨를 새 이장으로 뽑았다. 함께 출마한 최아무개씨는 5표를 얻는 데 그쳤다.
하지만 김재온 면장은 어일1리 이장으로 차점자인 배씨를 임명했으며, 봉길리 이장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김씨를 제치고 최씨를 임명했다. 주민들이 면사무소에서 격렬하게 반발하자 김 면장은 12월31일 오후 3시30분 1등을 한 하씨와 김씨를 이장으로 임명하고 면사무소로 불러 임명장까지 줬다. 하지만 5시간 뒤 김 면장은 다시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장 임명을 무효로 한다”고 통보한 뒤 자취를 감췄다.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사수 비상대책위원회는 3일 성명을 내어 “주민들이 압도적인 지지로 뽑은 이장 2명은 한수원 본사가 양북면에 들어서야 한다고 희망하는 사람들”이라며 “한수원 본사를 경주시내로 옮기려고 하는 최양식 경주시장과 의견이 다르다고 이장으로 임명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비상대책위 임병식(63) 위원장은 “면사무소 앞 집회를 계속 할 계획이며,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주시 김영춘 시민생활국장은 “이장 임명은 면장의 고유한 권한이며, 꼭 선거에서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을 이장으로 임명하라는 법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일은 한수원 본사 이전지를 놓고 5년 동안 주민들이 대립을 빚고 있는 것에서 비롯됐다. 2006년 12월 방사성폐기물처분장 경주 유치와 함께 한수원 본사가 서울에서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터 15만㎡로 옮겨 오기로 결정된 바 있다. 하지만 일부 경주시민들이 “시내로 옮겨 와야 경주 전체가 발전할 수 있다”며 시내 이전을 주장하면서 논란이 빚어졌다.
여기에다 최 시장이 2010년 7월에 취임하면서 한수원 본사를 경주시내로 옮겨 오게 하겠다고 밝히자 애초의 이전지인 양북면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대립이 심해졌다. 지난해 10월에는 최 시장이 경주시내 배동으로 한수원 본사를 옮기겠다고 선언했지만 한수원 쪽에서 “양북면 주민들이 동의한다면 옮겨 가겠다”고 맞서 주민들과 갈등만 키우고 있다.
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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