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만두파티·춤·노래…12명의 가족 ‘웃음꽃’

등록 2012-01-24 17:38

김학수·김금려씨 부부와 다둥이 가족. 사춘기 맏딸은 사진에선 빠졌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서로에게 설 선물을 나누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설을 보냈다고 했다.
김학수·김금려씨 부부와 다둥이 가족. 사춘기 맏딸은 사진에선 빠졌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서로에게 설 선물을 나누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설을 보냈다고 했다.
청원 김학수씨네 다둥이 가족의 설
새해 첫날 새벽 막둥이 얻어 10남매 대가족 이뤄
“아이 10명 세배받는 기분, 아마도 모르실 거예요”
“아이들 열명한테 설날 세배 받는 기분 아시나요. 한마디로 뿌듯합니다.”

충북 청원군 남이면 문동리 야트막한 언덕에 덩그러니 비닐집이 있다. 울도 담도 없다. 얼핏 보면 채소·과일 등을 키우는 시설하우스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문틈에 귀를 대면 재잘재잘 참새 같은 아이들 소리가 정겹다. 비닐집 끝자락 기다란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어난다. 비닐집 문을 열었다. 삐걱 소리와 함께 아이들 소리가 쏟아진다.

“삼촌 안녕하세요”, “아저씨 누구세요”, “어 누구지?”, “엄마 누가 왔어.”

눈을 둘 겨를도 없이 팔다리에 아이들이 와서 안긴다. “얘들아, 아저씨한테 그러면 못써”라는 두꺼운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자, 아이들은 둘러싼 팔을 해체한다. 순간 열개도 넘는 눈동자가 일제히 쏠린다.

“우리 애들이 이래요. 자기들끼리만 있어서 손님 오는 걸 참 좋아해요.” 아이들의 아버지 김학수(41)씨다. 이 비닐집이 ‘청원 다둥이 가족’의 보금자리다. 지난 1일 새벽 막내 사랑이를 얻어 이제 10남매가 됐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방안을 날아다니자 몸조리를 해야 하는 어머니 김금려(36)씨도 바닥에 몸을 누이지 못한다.

비닐집에 살며 빠듯한 생활
소박한 설선물에 기쁨 넘쳐

“날마다 전쟁이지요. 그래도 아이들이 착해, 막내 사랑이가 울고 보채면 이내 장난을 멈춥니다.”

부부는 1997년 5월 결혼했다. 한때 ‘동양 최대의 섬유공장’이라 불리던 대농 청주공장에서 유지·보수 일을 하던 남편은, 낮에는 방적 일을 하고 밤엔 대농 부설 양백여상에서 공부하던 착한 아내와 2년여 동안 사랑을 키운 끝에 식을 올렸다.


“운명이자 제 복이죠. 세상에 이런 사람은 또 없습니다.” 부부는 같은 말을 한다. 천생연분이다.

하지만 부부는 경제적으로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결혼을 앞두고 강원도 평창의 처가로 인사하러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결혼 비용을 모두 사고처리에 쏟아부었다. 간단히 식만 올리고 신혼여행은 생략했다. 대농이 폐업한 뒤 한두 군데 취업했지만 임금체불 등이 잇따라 그만둬야 했다.


다둥이 가족의 비닐집 보금자리.
다둥이 가족의 비닐집 보금자리.
남편은 2002년 봄 농협에서 융자를 받아 양봉을 시작했다.

“세 아이와 아내, 부모님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새 일을 했죠.” 전남 진도~충북 청주~강원 평창 등 꽃을 따라 한뎃잠을 자며 일했지만 돈이 모이지 않았다. 이상기온 탓에 꽃도, 벌도 신통치 않았다. 2009년 12월 양봉을 접었다. 남은 것이라고는 빈 벌통과 언덕 위 비닐집뿐이었다. 그사이 아이들은 여덟명으로 늘어났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왜 아이들을 많이 뒀을까? “아버지가 독자인데다 저 역시 외아들이어서 가족이 많은 가정이 너무나 부러웠죠. 또 주님이 주신 귀한 생명은 당연히 거둬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손재주 좋은 남편은 막노동, 용접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고물을 모았다. 그러나 중학생인 경민(15)·건일(13) 등 2명, 초등학생인 태민(11)·태경(9)·수성(8)·에스더(7) 등 4명, 유치원·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요셉(5)·소망(3)·에녹(2) 등 3명의 교육비, 막내 사랑이의 기저귀값·분유값 등을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형편이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은 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출산장려금 등도 중복 지급이라는 이유로 받을 수 없다.

그래도 이들의 설날은 누구보다 행복했다. 서로에게 소박한 선물까지 건넸다. 아버지는 아이들을 위해 마당 한편에 나무 농구대를 세웠고, 놀이터를 만들었다. 최근 화물차를 낡은 승합차로 교환해 아내에게 친정 나들이를 선물했다. 어머니는 새 김칫독을 헐고, 밀가루(15㎏)를 마련해 아이들과 푸짐한 만두파티를 벌였다. 아이들은 노래와 춤으로 보답했다.

“어렵지만 밝게 자라는 아이들, 착한 아내, 무던한 부모님, 늘 나눠주는 이웃들에게 감사해요. 한가지, 이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게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김씨는 요즘 비닐집 옆 빈터에 유기농사를 짓는 구상을 다듬고 있다.

청원/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