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재개발구역에 사는 ㄱ씨는 전세계약 만료 두달을 앞둔 지난해 4월, 집주인이 찾아와 “내년에 재개발이 되니 철거통보를 할 때까지 계속 살게 해주겠다”며, 대신 이사할 때 주거이전비를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게 했다. 주인은 각서 내용을 지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연대보증인을 세울 것을 요구했으며, 각서는 공증까지 받았다.
이 구역은 지난해 말 관리처분인가가 난 뒤부터 세입자 이주를 진행하고 있다. 임대아파트를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ㄱ씨는 집주인에게 임대아파트에 당첨되면 이사하겠다고 말했으나, 집주인은 각서를 근거로 계속 집을 비우라고 요구해 난처한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재개발 구역에서 집주인들이 법적으로 보장된 주거이전비를 주지 않으려고 세입자들에게 주거이전비 포기각서를 쓰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통합진보당과 봉천12-1구역 세입자대책위원회의 말을 들어보면, 최근 세입자들의 이주가 진행되는 이 구역에서 ㄱ씨를 포함해 세입자 3~4가구가 주거이전비 포기각서를 쓴 것으로 확인됐다.
현행법에서는 주거이전비 포기각서를 쓰는 것은 무효다. 2007년 개정된 공익사업법 시행규칙에는, 재개발로 살던 집을 떠나야하는 세입자들이 임대아파트와 주거이전비를 모두 받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 대법원도 지난해 “공익사업법 시행규칙은 사업시행자가 배제할 수 없는 강행규정”이라며 “세입자가 주거이전비를 포기하는 각서를 냈더라도 이는 강행규정에 어긋나 무효”라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재개발지역 곳곳에서 집주인들은 세입자에게 주거이전비나 임대주택 둘 중 하나만 선택하게 하거나, 주거이전비를 포기하는 각서를 쓰도록 요구해 갈등을 빚어왔다.
특히 봉천12-1구역의 경우, 주거이전비를 부담해야 할 주체인 조합이 이를 개별 조합원에게 떠넘긴 사실도 드러났다. 통합진보당이 공개한 이 조합의 정관을 보면, “조합은 임대를 준 조합원이 세입자에게 지급할 주거이전비를 300만원을 균일 지급하기로 하고, 나머지 금액은 조합원이 부담하기로 한다”고 적혀있다. 주거이전비는 공익사업법 시행규칙에 의해 일정하게 정해져 있으며, 보통 1인가구가 600만원 안팎, 6인가구는 1800만원가량이다. 이은정 통합진보당 민생부장은 “조합은 조합원에게 주거이전비 책임을 전가하고, 조합원은 다시 세입자에게 책임을 떠넘겨 결국 약자인 세입자만 피해를 보고 있다”며 “조합의 정관은 해당 구청에 제출하게 돼있는 만큼, 관할 구청이 사업시행인가를 내기 전 조합의 불합리한 횡포를 막을 수 있도록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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