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살인사건 녹음파일 공개
“차라리 듣지 말 것을….”
경기도 수원에서 112로 구조요청을 하고도 참혹하게 살해당한 20대 여성의 유족들은 경찰 112신고전화 녹음파일에 담긴 ‘살려달라’는 애원, 끔찍한 비명, 거친 테이프 찢는 소리 등을 듣고서 가슴을 치고 또 쳤다. 특히 범인의 목소리까지 흘러나오자 치를 떨며 “경찰도 살인자”라고 소리쳤다.
13일 오후 5시20분께 경기지방경찰청 112신고센터를 찾은 피해자 ㄱ(28)씨의 언니와 형부, 남동생과 이모·이모부 등 5명은 1시간가량 사랑하는 가족이 죽어가는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으며 발을 굴렀다.
이모 한아무개(50)씨는 “설사 부부싸움이었어도 무슨 조처를 했어야 할 정도로 처절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모부 박아무개(51)씨는 “가슴을 쿵쿵 때리는 조카의 비명 소리가 너무도 처절했다”며 “도중에 이어폰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끝을 흐렸다. 남동생(26)은 누나의 마지막 비명 소리가 들리는 순간 고통스러움에 손바닥으로 탁자를 움켜쥐었다고 했다. 다른 가족들은 충격에 빠져 정신을 놓은 듯했다. ㄱ씨의 부모는 충격 때문에 경찰청에 나오지 못했다.
이모 한씨는 “낮은 소리로 ‘안 되겠네’라는 조선족 말투의 범인 목소리도 두 번이나 들렸다”고 했다. ‘범인 목소리는 녹취되지 않았다’는 경찰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점이 거듭 입증된 것이다. 한씨는 “조카의 호소를 들은 경찰관 20명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큰 사건 같다’는 말만 해줬어도 이렇게 가슴 아프진 않을 것”이라며 애통해했다.
경찰은 녹음파일 공개를 거부하다 유족들의 정보공개 청구를 받아들여 이날 유족들만 112센터로 데려가 신고전화 녹취내용을 들려줬다. 유족들은 “경찰관들의 책임을 묻기 위해 조만간 전문가와 함께 다시 녹음을 듣겠다”고 말했다.
112신고센터의 안이하고 허술한 대응이 비난을 사고 있는 가운데, 112센터 경찰관이 사건 당일 신고내용이 녹취된 녹음파일을 찾지 못해 수색 시간을 허비하는 어이없는 정황도 드러났다. 경찰은 ㄱ씨에게 17번이나 질문하고도 상황을 헛짚은 데 이어, 현장에 출동한 형사들이 ‘정확한 녹음내용을 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컴퓨터에 녹음파일이 저장된 위치를 찾지 못했다. 이 때문에 형사들은 신고 2시간 뒤에야 좀더 정확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경기경찰청은 ‘엽기살해범’ 오원춘(42·중국동포)씨가 머물렀던 경기도 수원·화성·용인, 경남 거제, 제주 등 모두 6곳 말고도, 2010년 9월께는 서울에서도 지냈던 점을 확인하고 추가 범죄 연루 여부를 조사중이다.
한편 피해자 ㄱ씨의 전화를 경찰이 먼저 끊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와 관련해 경찰청은 112신고전화 내부회선 시스템 로그기록을 살펴본 결과, 피해자 쪽 전화가 2초 먼저 끊긴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수원/김기성 기자, 유선희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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