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의 막판 중재로 서울 시내버스 노사 임금 협상이 18일 새벽 4시40분께 극적으로 타결됐다. 15년만의 서울 시내버스 파업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날 새벽 2시까지 버스노조의 전면파업 돌입은 기정 사실처럼 보였다. 하루 전인 지난 17일 오후 3시 서울역 앞에서 서울시내버스 노조원 5000여명은 파업 출정식을 했다. 출정식을 마친 노조는 서울역 맞은편 용산구 동자동 버스노조회관으로 옮겨 지부장 결의대회를 하며 파업 결의를 이어갔다.
17일 밤 8시 김상범 서울시 행정1부시장이 버스노조 회관을 찾아와 “시민불편이 심하니 파업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했으나, 노조는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한 서울시가 파업을 부추기고 있다”고 맞받았다. 성과없이 서울시로 돌아가는 김상범 부시장에게 ‘박원순 시장이 노조를 만날 계획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시장님이 나설 상황은 아니잖느냐”는 답이 돌아왔을 뿐이다. 협상에 진전이 없고 형식상 임금협상은 노사 자율교섭이라 서울시장이 나서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시 교통분야 실무 최고책임자인 김 부시장의 방문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노조는 본격적인 파업 준비에 들어갔다.
밤 9시, 버스노조회관의 노조 실무자들은 지부별로 전화를 돌리면서 파업 준비상황을 확인했다. 17일 자정에 이르러서는 산하 지부별로 시내버스 타이어의 바람을 빼는 움직임도 보였다. 파업에 들어간 뒤 사용자 쪽이 대체인력을 투입해 버스 운행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이를 원천 차단하려는 조처였다.
다음날인 18일 새벽 2시에 이르자 노조 간부들은 교섭위원을 비롯한 중앙간부만을 남긴채 파업 지도를 위해 각 사업장으로 흩어졌다. 이때까지도 서울시와 사용자, 노조는 물밑 협상을 계속했지만 뚜렷한 진전은 없었다. 지지부진하던 협상 흐름은 박원순 시장이 새벽 3시에 맞춰 버스노조회관을 방문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며 급물살을 탔다. 박 시장은 이에 앞서 17일 저녁 7시30분쯤 트위터에 “오늘 광주 5·18전야제, 내일 5·18묘역참배, 여수엑스포서울관 개관식 참석 모두 포기했습니다. 관계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서울버스파업때문이죠. 지금 시장실에서 도시락시켜먹고 있습니다 밤새 좋은 타결이 있도록 최선 다하겠습니다”라고 협상 타결 의지를 밝혔다.
박 시장 방문 소식이 알려지자 새벽 2시를 넘어 사용자 쪽 관계자, 윤준병 서울시 교통본부장을 비롯한 서울시 관계자들이 버스노조회관으로 몰려왔다. 새벽 2시40분부터 노사는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박원순 시장은 새벽 3시께 김상범·김형주 부시장 등과 함께 노조회관에 도착해 류중근 노조 위원장을 따로 불러 15분간 비공개로 만났다. 박 시장은 이후 협상장의 노사 교섭위원들을 만나 “저는 기본적으로 노동자들 입장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부채가 19조원, 대중교통 부문 적자만 1조원이라, 임금인상에 대한 시장의 재량폭도 제한적이다. 파국보다는 함께 협력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박 시장이 떠난 후 서울 시내버스 노사는 파업 시한인 새벽 4시를 40분 넘긴 새벽 4시40분께 임금협상을 극적으로 타결했다. 임금 3.5%와 무사고수당 4만원을 인상하기로 한 합의였다. 이는 노조가 수용했던 서울지방노동위 조정안(임금 3.5%+무사고수당 5만원, 총액기준 5.1%)과 서울시쪽 안(3.5%+3만원, 4.5%)의 중간 절충안이었다.
노조는 지난 14일 조합원 91.4%의 찬성으로 총파업을 결의한 이후 지난해 대비 9.5% 임금 인상을 요구해왔으며 사용자 쪽은 재정난을 이유로 임금 동결을 고수했다. 서울시는 총액대비 최대 4.5%까지 인상이 가능하다는 태도였다.
협상 타결 직후 각 사업장에서 지도부 지침을 기다리고 있던 버스 기사들에겐 ‘협상 타결’이라는 휴대전화 문자가 갔다. 새벽 4시40분부터 서울 시내버스가 정상운행됐고 서울시도 비상수송대책을 전면 해제했다.
박 시장은 새벽 5시50분쯤 트위터에 “방금 서울버스 파업 타결되었습니다. 버스노동조합 조합원, 버스사업자 여러분 모두의 승리입니다. 파업 대비한 공직자 여러분도 고생 많았습니다. 시민여러분 걱정끼쳐드려 송구스럽습니다”란 글을 올렸다.
박 시장은 시내버스 협상이 타결되자 오전 7시30분 비행기를 타고 광주로 출발해 오전 10시 국립 5·18 민주묘역에서 열린 광주민주화운동 32돌 기념식에 참석했다. 현직 서울시장으로 첫 광주 5·18 기념식 참석이다. 박 시장은 “애초 전야제 오기로 했는데 (버스 파업으로) 오지 못했다. 서울에도 기념식이 있지만 광주에 참석해 영령을 기리는 것에 각별한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권혁철 박기용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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