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비 제막식
고등학생들이 직접 서명과 모금운동을 벌여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난과 넋을 달래는 ‘해원비’를 세웠다. 국내에서 고교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비석이 만들어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충남 공주 영명고등학교는 23일 오후 교내에서 해원비 제막식을 열었다. 이 행사는 이 학교 동아리 ‘정신대문제연구회’와 학생회가 중심이 돼 지난 5~6월 공주 시내 고교 8곳 학생 4276명으로부터 ‘위안부 기림비 설치 지지 서명’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가로 2.6m 높이 1.5m 너비 0.6m의 해원비에는 “잊지도 않겠지만 용서도 못하리라/ 꽃다운 청춘 나이 일본군에 끌려가/ 님들은 지옥 같은 날 당하고 견디셨네// 그러나 님들이여 그 원한 놓으시고/이제는 남은 세월 편안히 쉬시옵고/ 목숨이 다하시는 날 천국 위로 받으소서”라는 시조 2편이 새겨졌다. 비문은 나태주 시인(공주문화원장)이 썼으며, 비석 건립 비용 700만원은 학생들 모금액 500여만원에다 졸업생과 학부모, 학교가 보태 마련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고령과 건강 탓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학생들은 조만간 이들을 찾아 해원비 건립 소식과 선물을 전할 참이다.
장재영 총학생회장은 “학생들이 배우는 근현대 교과서에는 위안부 관련 설명이 서너 줄밖에 안 된다”며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민족적인 비극을 널리 알리기 위해 비석 건립에 나섰다”고 말했다. 시사탐구 동아리 학생들이 주축이 돼 만든 정신대문제연구회가 지난 3·1절을 앞두고 전국 고교생 535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의 86%가 ‘일제강점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왕근 지도교사는 “학생들이 입시에 찌들어 있다고들 하지만, 이들에게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도록 기회만 준다면 잘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김동희 사무국장은 “위안부 문제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역사를 잊지 말자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해원비 건립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위안부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해원비 제막식 뒤에는 전국 20여 고교에서 모인 학생들이 17가지 주제로 연구한 논문·활동보고서를 발표하는 제1회 영명학술제가 열렸다.
공주/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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