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평택 쌍용자동차 ‘옥쇄파업’을 이끌다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한상균 전 전국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이 5일 새벽 옥살이를 마친 뒤 경기 화성시 마도면 화성직업훈련교도소를 나서며 마중나온 노조원들에게 오른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화성/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쌍용차파업 이끈뒤 3년 옥고…출소한 한상균 전 지부장
면회 때 희망잃지 말자 호소에도
노조원·가족 22명 목숨 끊어
신문보기 겁나…참담함 연속 인간이고 싶어 77일 ‘옥쇄파업’
참사 우려돼 대타협 결단 내려
사쪽, 이행 않고 노조 와해 시도
“그들은 우리가 영혼이 없는 노동자이기를 바랐다.” 지난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77일간 쌍용자동차(쌍용차) 파업을 이끌었던 한상균(51) 전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이 5일 새벽 교도소에서 나왔다. 한상균 전 지부장은 대법원에서 3년형이 확정돼 수감생활을 해오다 이날 경기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그는 꼭 3년 전인 2009년 8월6일 회사 쪽과 이른바 ‘노사 대타협’을 이뤄내 파업을 푼 뒤 경찰에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2009년 한여름, 지옥과도 같았던 옥쇄파업의 현장에서 감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같은 해 12월30일 수원구치소 평택지소에서 면회온 노조원들에게 “희망만은 버리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쌍용차 노조원과 그 가족 22명이 생활고 또는 절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전 지부장은 5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수감 중에 신문 보기가 겁났다”고 털어놨다. 노조원들이 하나둘씩 숨지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참담함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파업이 끝난 뒤 왜 많은 이들이 숨졌나?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를 경험했지만 마무리 시점에는 희망의 기약이 있었는데, 쌍용차는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를 절망에 가뒀다. 사회적 재앙이나 다름없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대한 사회의 외면과 무관심도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생존의 문제를 놓고 자본의 노예가 될 것인지 억압을 당할 것인지 선택하라는 게 대한민국 자본 아닌가? 그들은 우리에게 인간의 존엄성은 물론 영혼이 없는 노동자이기를 바랬다.” 쌍용차는 2009년 총인원의 36%인 2646명의 정리해고를 놓고 노사가 대립한 끝에 마지막 남은 정리해고자 974명 가운데 파업 농성을 벌인 조합원 640여명에 대해 무급휴직과 영업전직 48%, 희망퇴직 52%의 비상인력운영계획에 합의하고 1년 뒤에 무급휴직자를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당시 파업의 성과물인 무급휴직자 1년 뒤 복직 합의는 아직 이행이 안 됐는데? “회사가 당시 노조의 파업을 파괴하려고 조합원 개별 접촉을 통해 3년 무급자 신청을 받았다. 노조는 1년 무급안을 냈고 그것을 회사가 수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 물량 핑계를 대고 합의를 지킬 수 없다고 한다. 파렴치한 행위다.” -당시 77일간 ‘옥쇄파업’에서 뭘 얻고 잃었나? “무엇인가를 얻거나 잃을 것을 염두에 뒀다면 단 하루도 (파업을) 못했을 것이고 참혹한 상황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인간이고 싶다는 것 때문에 그 험한 시간을 견뎌냈다. 노동자도 떳떳한 가장이고 사회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살고 싶은데 왜 하루아침에 공장을 떠나야 하는지 분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부장이나 노조 지도부의 결정에 따라서만 투쟁을 이어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자본은 그런 우리를 옥쇄파업으로 내몰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타협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 “회사 쪽은 노조 이탈을 유도했고 폭발 위험성이 높은 도장공장으로 경찰 특공대가 접근하면서 옥상의 조합원들은 떨어지고….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우려됐다. ‘함께 살자’고 외치면서 했던 투쟁인데, 눈물을 곱씹으면서 결단을 내렸다.” -최근 정치권이 ‘쌍용차특위’ 등을 구성했다. “쌍용차는 이명박 정권하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를 와해시키는 등 반노동자 정책의 실행단계에서 이뤄진 첫 사례였다. 지금 만도와 에스제이엠(SJM) 등 금속노조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봐라. 쌍용차특위는 위기를 조장해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노조를 깨고 자본의 목적을 달성시켜주는 반노동 정책의 실체를 확인하고 국가 책임을 따져야 한다.” -쌍용차 문제 해결은 어떻게? “쌍용차 정상화의 첫걸음은 우리 노동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을 이렇게 탄압해 성공한 회사는 없다. 전향적인 조처와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게 사용자 쪽의 책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사회와 시대의 요구에 실천으로 답해야 한다. 그것을 지켜보겠다.” 평택/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노조원·가족 22명 목숨 끊어
신문보기 겁나…참담함 연속 인간이고 싶어 77일 ‘옥쇄파업’
참사 우려돼 대타협 결단 내려
사쪽, 이행 않고 노조 와해 시도
“그들은 우리가 영혼이 없는 노동자이기를 바랐다.” 지난 2009년 대규모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77일간 쌍용자동차(쌍용차) 파업을 이끌었던 한상균(51) 전 전국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이 5일 새벽 교도소에서 나왔다. 한상균 전 지부장은 대법원에서 3년형이 확정돼 수감생활을 해오다 이날 경기 화성직업훈련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그는 꼭 3년 전인 2009년 8월6일 회사 쪽과 이른바 ‘노사 대타협’을 이뤄내 파업을 푼 뒤 경찰에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체포됐다. 2009년 한여름, 지옥과도 같았던 옥쇄파업의 현장에서 감옥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같은 해 12월30일 수원구치소 평택지소에서 면회온 노조원들에게 “희망만은 버리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쌍용차 노조원과 그 가족 22명이 생활고 또는 절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전 지부장은 5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수감 중에 신문 보기가 겁났다”고 털어놨다. 노조원들이 하나둘씩 숨지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참담함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파업이 끝난 뒤 왜 많은 이들이 숨졌나?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를 경험했지만 마무리 시점에는 희망의 기약이 있었는데, 쌍용차는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를 절망에 가뒀다. 사회적 재앙이나 다름없는 대규모 구조조정에 대한 사회의 외면과 무관심도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생존의 문제를 놓고 자본의 노예가 될 것인지 억압을 당할 것인지 선택하라는 게 대한민국 자본 아닌가? 그들은 우리에게 인간의 존엄성은 물론 영혼이 없는 노동자이기를 바랬다.” 쌍용차는 2009년 총인원의 36%인 2646명의 정리해고를 놓고 노사가 대립한 끝에 마지막 남은 정리해고자 974명 가운데 파업 농성을 벌인 조합원 640여명에 대해 무급휴직과 영업전직 48%, 희망퇴직 52%의 비상인력운영계획에 합의하고 1년 뒤에 무급휴직자를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당시 파업의 성과물인 무급휴직자 1년 뒤 복직 합의는 아직 이행이 안 됐는데? “회사가 당시 노조의 파업을 파괴하려고 조합원 개별 접촉을 통해 3년 무급자 신청을 받았다. 노조는 1년 무급안을 냈고 그것을 회사가 수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 물량 핑계를 대고 합의를 지킬 수 없다고 한다. 파렴치한 행위다.” -당시 77일간 ‘옥쇄파업’에서 뭘 얻고 잃었나? “무엇인가를 얻거나 잃을 것을 염두에 뒀다면 단 하루도 (파업을) 못했을 것이고 참혹한 상황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인간이고 싶다는 것 때문에 그 험한 시간을 견뎌냈다. 노동자도 떳떳한 가장이고 사회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살고 싶은데 왜 하루아침에 공장을 떠나야 하는지 분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부장이나 노조 지도부의 결정에 따라서만 투쟁을 이어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자본은 그런 우리를 옥쇄파업으로 내몰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타협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 “회사 쪽은 노조 이탈을 유도했고 폭발 위험성이 높은 도장공장으로 경찰 특공대가 접근하면서 옥상의 조합원들은 떨어지고….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우려됐다. ‘함께 살자’고 외치면서 했던 투쟁인데, 눈물을 곱씹으면서 결단을 내렸다.” -최근 정치권이 ‘쌍용차특위’ 등을 구성했다. “쌍용차는 이명박 정권하에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를 와해시키는 등 반노동자 정책의 실행단계에서 이뤄진 첫 사례였다. 지금 만도와 에스제이엠(SJM) 등 금속노조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봐라. 쌍용차특위는 위기를 조장해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노조를 깨고 자본의 목적을 달성시켜주는 반노동 정책의 실체를 확인하고 국가 책임을 따져야 한다.” -쌍용차 문제 해결은 어떻게? “쌍용차 정상화의 첫걸음은 우리 노동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을 이렇게 탄압해 성공한 회사는 없다. 전향적인 조처와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게 사용자 쪽의 책무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사회와 시대의 요구에 실천으로 답해야 한다. 그것을 지켜보겠다.” 평택/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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