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기온이 뚝 떨어진 초겨울 날씨였지만, 안귀남(서울시 관악구 행운동)씨는 아들 박이삭(3)군을 데리고 바깥나들이를 했다. 안씨가 5분가량 걸어 간 곳은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신창문화복지센터 2층 ‘책이랑 놀이랑 도서관’이다. 집에서 혼자 심심해하는 이삭이가 이곳에서만큼은 또래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기 때문이다.
안씨는 “요즘처럼 날씨가 추워지면 어린애를 데리고 멀리 가기 어려워 집에서 가까운 이곳으로 자주 온다”고 말했다. 크지만 멀리 있는 도서관보다는 작지만 가까이 있는 도서관이 요긴하다는 이야기다.
이 도서관은 관악구가 ‘걸어서 10분 거리 도서관 사업’으로 세운 작은도서관의 하나이다. 하지만 단순히 가깝다고 아이들과 엄마들이 모이진 않는다. 이곳은 ‘책이랑 놀이랑’이라는 이름처럼 아이들이 책만 보는 게 아니라 신발을 벗고 양말 차림으로 뛰어놀기도 한다.
“개울가에 올챙이 한마리 꼬물꼬물 헤엄치다 뒷다리가 쑥 앞다리가 쑥 팔짝팔짝 개구리 됐네….” 이날 오전 10시께 도서관에는 동요가 흥겹게 울리고, 또래별로 뭉친 아이들이 이편에서 저편으로 달리기도 하고 뜀뛰기도 하고 있었다.
놀이시설은 오전 10~11시, 오후 3~4시 하루 두 차례 이용할 수 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음악이 꺼지고 아이들은 엄마 무릎에 앉아 책, 퍼즐, 공룡 모형 등을 갖고 논다. 이곳에서는 엄마들이 소리내어 그림책을 읽어줘도 된다. 아이들은 대개 1시간 놀고 1시간 책을 보고 엄마 손을 잡고 걸어서 집에 간다.
전체 면적 210㎡의 3분의 1가량이 미끄럼틀 등 놀이시설이고, 한쪽엔 바닥이 따뜻한 온돌방을 갖춰 놓아 아이들이 책을 보거나 놀다 지친 아이들이 잠을 잘 수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을 찾은 안채옥·최희선씨는 “다른 도서관처럼 아이들이 조용히 책만 봐야 하는 게 아니라 마음껏 떠들고 놀면서 친구를 사귈 수 있어 좋다”며 “무료인 이 도서관이 놀이시설을 갖춘 키즈카페보다 낫다”고 말했다.
국회도서관장 출신인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2년 전 취임 당시 4개였던 도서관을 21개로 늘렸고 임기가 끝날 때까지 40개를 만들 계획이다. 권일주 관악구 홍보기획팀장은 “예전엔 외부 회의에 가면 ‘관악=달동네’란 이미지가 강했는데 요즘은 ‘관악=도서관’이란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근처에 작은도서관이 늘면서 관악구 어린이집들이 매주 하루나 매달 하루를 ‘도서관에 소풍가는 날’로 정해놓고 어린이들을 데려온다. 이날 오전에도 관악구 은천동에 있는 배꽃유치원 어린이 20여명이 이 도서관에서 한시간쯤 놀고 갔다.
작은도서관은 규모 탓에 갖춘 책이 많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관악구는 작은도서관마다 필요한 책을 구입하는 대신 ‘공유’하고 있다. 구 전체 도서관을 통합시스템으로 연결해서 집 가까운 도서관에서 자료검색과 도서신청이 가능하고, 보고 싶은 책이 집에서 멀리 있는 도서관에 있으면 집 가까운 도서관으로 배달도 해준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